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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Fiction_소설103

단지 뉴욕의 맛 단지 뉴욕의 맛 / 제시카 톰 지음, 노지양 옮김. 다산북스 (2018)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레스토랑 비평가 버전. 음식 작가를 꿈꾸는 뉴욕의 젊은 여성이 업계의 거물과 얽히며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권력을 움켜쥐려고 하지만, 결국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나아가는 그런 이야기. 여성이 권력을 잡는 방법은 남성성(혹은 투쟁심이나 경쟁심이라고 해도 좋은)을 획득하거나 여성성(남성을 유혹하는 것 뿐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특징을 무기로 삼는)을 부각시키는 두 갈래로 묘사되는 듯 하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여성성을 부각시키는 사람을 욕할 때 쓰는 말이 ‘창녀’다. 최소한 이 책의 저자, 제시카 톰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이 Food Whore, 즉 음식 창녀. 꽤.. 2023. 12. 15.
맛 Une Gourmandise 맛 Une Gourmandise /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홍서연 옮김. 민음사 (2018) 세계 최고의 요리 평론가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지나 온 맛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이야기.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한 그의 여정은 대다수의 독자가 예상치 못했던 결말을 맞는다. 하지만 그 전체적인 이야기보다도 더 매력적인 것은 각 장의 요리와 맛에 대한 묘사, 맛 뿐 아니라 그와 연결되어 맛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가 관능적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날것. 그것이 조리하지 않은 재료를 야만적으로 먹는 것으로 요약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근거 없는 일인가! 날생선의 살을 베는 것은 돌을 자르는 것과 같다. 초보자에게 대리석 암괴는 하나의 덩어리로 보인다.그는 끌을 아무 데나 대고 찍지만 돌은 .. 2023. 7. 26.
푸른 수염 "요리는 하나의 예술이자 권력이오. 내가, 그것이 누구든, 누군가의 권력에 복종하는 일은 있을 수 없소. 당신이 내가 하는 식사를 함께하고 싶다면 그건 대환영이오만, 반대의 경우는 사절이오." "사람들은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이렇게 말하지. 그런 여행을 하려면 나에게는 없는 단순함이 필요하오.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들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만들었다고 믿는다오. (역자 주: 프랑스어 동사 는 와 두 가지 뜻을 다 가지고 있다) 집주인은 순금으로 된 잔을 가지러 갔고, 부드러운 노른자 크림으로 그것을 채웠다. 사튀르닌은 넋을 잃고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바로크 양식의 금잔에 담긴 불투명한 노른자 크림이 너무 아름다워요!"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돈 엘레미리오는 처음으로 진정한 호의를.. 2023. 5. 25.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목록 1 변신 이야기 1 https://blackdiary.tistory.com/1317 2 변신 이야기 2 https://blackdiary.tistory.com/1317 3 햄릿 https://blackdiary.tistory.com/1418 4 변신 · 시골의사 https://blackdiary.tistory.com/1365 5 동물농장 https://blackdiary.tistory.com/1550 6 허클베리 핀의 모험 https://blackdiary.tistory.com/1411 7 암흑의 핵심 https://blackdiary.tistory.com/1385 8 토니오 크뢰거·트리스탄·베니스에서의 죽음 https://blackdiary.tistory.com/1442 9 문학이란 무엇인가 https.. 2023. 5. 17.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맛있는 음식 냄새가 밖으로 퍼져나오자 젊은이는 여행을 떠나며 준비해 온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 아침이었고, 오후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 3펜스짜리 양피 증지 가지고 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로빈은 한숨을 쉬며 혼자 말했다. - 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 권력있는 지인을 찾아왔는데 그 사람이 몰락한 모습을 보는 심정을 잘 묘사했다. 삼국지에서 노식이 끌려가는 모습을 본 유비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식민지 시절의 미국 주지사가 파리 목숨이었다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단편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는 곳에선 죽은 사람을 땅에 묻지. 죽은 사람의 모습을 산 사람들의 시야에서 가리기 위해서 말일세. 하지만 아마 백 년이 지나도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 2023. 5. 17.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동물농장 동물농장 /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민음사 (1998). 여러가지 전문 지식과 복잡한 사회 문제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쿠르츠게작트(Kurzgesagt)"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영어로는 In a Nutshell, 즉 간단하게 흝어보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여러 영상중에서 "우리는 또 다시 그럴 겁니다(링크)"라는 영상이 있는데 고차원적인 문제와 이론을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설명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 잘 알려준다. 그 해결책 중의 하나가 단순화로 시작되는 교육적 거짓말이다. 태양계 행성들의 크기는 너무나 차이가 크고 그 거리 또한 무시무시하게 멀지만 이를 단순화시키고 왜곡시켜 우리에게 친숙한 태양계 모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2023. 5. 12.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 조이스 캐럴 오츠 외 40인 지음. 현대문학 (2015) 단편집은 좋아하지만,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놓은 단편집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내 취향에 맞는 글과 맞지 않는 글이 온통 뒤섞여서, 내가 좋아할만한 글을 찾으려면 짚더미 속의 바늘까지는 아니어도 보석을 캐는 일곱 난장이의 수고 정도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전래동화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의 모음집으로, 모티브가 된 원작 역시 상당히 잔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들이 접하게 되는 말랑말랑한 동화들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아이러니 때문에 잔혹동화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고, 이 특이점을 활용하려는 작가들 역시 많았다. 하지만 유명한 동화만.. 2023. 4. 1.
파인다이닝 파인 다이닝 / 최은영 외. 바통 (2018) 읽으면서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feat 이외수)’를 계속 중얼거렸다. 내게 있어서 음식이란, 요리란, 화려하거나 소박하거나를 떠나서 뭔지는 몰라도 어쨌든 행복함이나 그 비스무레한 것과 연관된 개념이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곧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고,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는 최소한의 긍정적인 사고를 요구하니까. 하지만 이 소설은 일곱 명의 작가가 죄다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분위기는 비오는 날 하늘처럼 꾸무럭하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거다. 내게 있어서 밀푀유 나베가 즐거운 경험이었다면, 채식주의자 레즈비언 애인을 둔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어떤 아득한 세계의 상징, 영원한 불가능의 표지”일 수도 있다는 사.. 2023. 2. 9.
앨리스 죽이기 앨리스 죽이기 /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검은숲(2015) 도서관 서가를 지나다가 앨리스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 팅커벨 죽이기가 연속으로 꽂혀있는 것을 보고 ‘뭔 동화책 주인공들을 이렇게 줄줄이 죽이나’ 싶어서 읽기 시작한 책. 주인공 ‘아리’는 이상한 나라의 꿈을 꾸다가 꿈 속에서 동화 속 등장인물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현실에서도 그에 대응하는 누군가가 비슷한 방식으로 살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실과 이상한 나라를 오가며 연쇄 살인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주된 내용. 결말 부분의 반전은 나름 참신했지만 전반적인 필력이나 글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그렇게까지 내 취향은 아니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파프리카쪽이 내 입맛에는 더 맞는달까. 따라서 나머지 메르헨 시리즈는 굳이 .. 2023. 1. 12.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 /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소미미디어 (2017) 제목부터가 뭔가 약간 공포스러운, 하지만 표지는 그와는 정반대로 달달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수상한 소설. 차라리 “너의 심장을 먹고싶어”였다면 로맨틱한 분위기가 어찌어찌 날지도 모르겠는데 하필이면 췌장인 탓에 꽤나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든다. 물론 이 모든 건 작가가 의도한 대로겠지만. 유명한 작가 두 명의 이름과 동명이인인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의 동급생이자 불치의 병에 걸려 일년 정도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야마우치 사쿠라. 주인공은 우연히 사쿠라가 쓰고 있는 투병일기 비슷한 문서를 보게 되고, 이를 계기로 친해지면서 그녀의 버킷리스트를 달성하는데 함께하게 된다. 사회생활에 뭔가 문제가 있는 주인공이 신체적으로 문제가.. 2022. 12. 27.
몽환화 몽환화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비채 (2014) “탁상 위에는 차가 든 페트병과 찻잔이 놓여 있었는데 방석에 쏟아진 것은 차가 아니라 순수한 물이었다고 하더군요. 물을 쏟은 게 아키야마 씨인지, 아니면 범인인지, 왜 물인지, 모두 불명인 상태입니다.” “커피는 아니다. 차도 아니다. 그럼 무엇을 위해 물을 끓였나. 진상은 매우 단순합니다. 마시기 위한 물입니다. 이른바 백탕이라는 거죠. 아키야마 씨는 차 대신에 백탕을 찻잔에 넣어 마셨습니다. 이는 차를 끊은 사람에게는 매우 일반적인 일입니다.” 백비탕에 대해 알아보다가 백탕이 트릭으로 사용된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읽기 시작한 몽환화. 이제는 멸종되어 역사 기록 속에서만 존재하는 신비의 노란색 나팔꽃. 그리고 이 꽃을 길러보려던 노인의 죽.. 2022. 7. 8.
만국과자점 마음가는대로: 무슨 과자든 만들어 드립니다 만국과자점 마음가는대로 / 미조쿠치 사토코 지음, 김현화 옮김. 소미미디어 (2021) 무라사키 소스케가 주인인 ‘만국과자점 마음 가는 대로’는 그 이름에 걸맞게 일본 화과자에서부터 우주식까지 과자라고 이름붙은 것은 다 만드는 가게다. 특히 손님에게 특별 주문이 들어오면 무엇이든 만들어 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르바이트생 구미와 함께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에 얽힌 과자를 만들어주는 것이 주된 내용. 300페이지짜리 작은 책에 24개의 에피소드가 담겼으니 그야말로 초단편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길이도 그렇거니와 이야기의 진행 역시 빈말로도 ‘깊이가 있다’고 할 수준은 아니다. 소설책이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였다면 또 모를까. 다만 세계 각국의 과자 - 롤케이크나 만주같은 익숙한.. 2022.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