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겐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벌어지는 참상을 그린 만화, 맨발의 겐. 히로시마에 살던 소년이 원폭 투하로 인해 가족들을 잃고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서 몇 안되는 개념작'으로 통하기도 하는데, 작중 내내 군부와 천황에 대한 비판 및 폭력에 대한 반감을 내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박씨'라는 조선인 강제징용자가 나름 호의적인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하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만화가 그렇게 일본의 잘못을 반성하고 자성을 촉구하는 작품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잘못했다!'의 느낌이 아니라 '폭력은 나빠! 일본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일부 지도층도 나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윗사람에게 순종했을 뿐이야! 근데 그걸 안가리고 원폭을 떨어트려 모두 죽인 미국은 더 나빠!'의 느낌이랄까. 아주 가끔 일본군이 다른 나라에 저지른 만행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극소수. 그보다는 원폭 및 군국주의에 의한 희생자로서의 일본인에 초점을 맞춘다.
좋게 보자면 순진한 거고, 나쁘게 보자면 일부 지배계층을 희생양으로 몰아 면피하려는 의도라고도 보여진다. 사실, 이러한 '일반 일본 국민들 역시 피해자'라는 컨셉은 유명한 지브리 애니메이션인 '반딧불의 묘'에서도 잘 드러난다. 몇몇 사람들은 군국주의 미화와 희생자 부각을 동일시 하는데, 사실 이는 엄연히 다른 내용이다. 전자가 '그때는 좋았지. 우리가 운만 좀 더 따라줬더라면'이라는 생각이라면 후자는 '그 당시 대다수 사람들은 그냥 윗사람들에게 순종하다가 벼락 맞은거다. 그래서 호된 꼴을 당했지. 무식이 죄라고는 하지만 억울하다'의 느낌. 하지만 피해를 입은 타국민 입장에서는 그런 지도자들에게 순종하고 협력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공범 취급을 할만한 이유가 되는지라 여기서 인식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듯 하다.
뭐, 일단 일본인, 그중에서도 좌익에 속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어떤 건지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지만 솔직히 말해 그닥 재미는 없고, 이야기 패턴도 반복되는지라 추천하기는 좀 어려운 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