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tro 2022. 6. 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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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문학동네 (2021)

“양고기 치즈버거랑 브루클린 라거 1파인트 주세요.”

곧장 주방에서 치익 하고 패티를 굽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감자를 튀기는 소리도.

‘이 소리만으로 한 잔 마시겠어.’ 


이혼을 하고 아이와 떨어져 혼자 사는 쇼코.

밤중에 누군가를 지켜봐주는 일을 하며 살기 때문에 저녁식사는 이른 아침이나 한낮에 하게 된다.

일하러 나가는 싱글맘이 아픈 아이가 자는 동안 돌봐달라고 하거나, 혼자서 쓸쓸히 집을 지켜야 하는 애완견과 함께 있어주거나, 잠이 오지 않아 심심한 노인의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는 그런 일을 하고 나면 허기가 몰려오는 주인공.

그리고 맛있는 술 한잔 곁들여 식사를 하며 자신이 돌봐준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초밥 장인이 오징어귀와 연어 초밥을 건네줬다. 쇼코는 오징어를 좋아했다.

“쇼코는 돈이 별로 안 들어서 좋다니까.”

신혼 무렵에 딱 한 번 홋카이도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 식당의 삿포로점에 갔었다. 오징어를 먹고 있는 쇼코의 귓가에 그가 그렇게 속삭였다. 그와의 달콤한 추억은 그 정도다.

‘우와, 오징어 때문에 벌써 몇 년이나 잊고 있던 일이 생각나 버렸어.’

쇼코는 앞에 놓인 초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조합-야간도우미로서 만나는 사람들의 인생과 쇼코 자신의 복잡한 심경과 맛있는 안주를 곁들인 술-이 생각보다 깔끔하다.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우울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게 아니라, 힘들고 슬픈 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야말로 기분 전환을 하고 새로운 힘을 얻는다.

그렇기에 오늘의 점심 메뉴, 혹은 저녁밥에 목을 메는 많은 사람들이 든든하게 밥을 먹고 맛있는 커피 한잔으로 입가심한 쇼코의 말에 공감할 수 있을 듯 하다.


어쨌든 나는 당분간 이 동네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 빌딩 많고 삭막한 이 동네에서.

또 올게요.

적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생겼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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