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tro 2024. 2. 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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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학교 앞 구멍가게 주인은 세상에서 가장 부자처럼 보였다. 수많은 장난감과 학용품, 해적판 만화책, 그리고 각종 불량식품의 산더미. 그 모든 것의 주인이었으니까. 그 중에서도 특히 알록달록한 식용색소와 설탕 범벅의 군것질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욕망을 부채질하는 보물이었다. 그래서 은박지로 감싼 씨앗 몇 개 받고 각종 사탕과자를 건네주었던 위그든씨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들의 대인배로 칭송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마법같은 캔디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더욱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단, 그의 진면목을 실감하려면 이번에 개봉한 영화의 전작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2005년작인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아니라, 1971년에 개봉한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국내방영 제목은 초콜렛 천국)"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팀버튼과 조니뎁의 조합을 엄청나게 좋아하고 (스위니 토드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이야기 할 때면 빠지지 않는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역시 아주 만족스럽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윌리 웡카 이야기라고 보기엔 힘들었는데, 팀버튼 식으로 재해석된 윌리 웡카는 뭐랄까 현대 미술의 시각으로 새롭게 그린 르네상스 미술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1971년작은 여러모로 기술적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알드 달 원작 소설을 그대로 재현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화려한 사탕과 초콜렛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웡카 역할을 맡은 진 와일더다. 둥글둥글한게 순박하게 생겨서 하는 짓을 보면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진다.

조니 뎁이 기본적으로 "저 녀석 뭔가 위태위태한게 일을 저지를 것 같다"는 분위기를 깔고 들어간다면 진 와일더는 "순진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히틀러 찬양하는 뮤지컬을 만들어 사업 실패를 꿈꾸는 놈"의 느낌이다. 아이들을 초대해서 자신의 전 재산을 물려주려는 천재 초콜렛 제작자는 어찌 보면 끝없이 베풀며 아이들을 좋아하는 산타클로스의 화신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싸가지 없는 꼬맹이들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인디언 인형 사라지듯 하나씩 제거해버리면서 냉혹한 싸이코패스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라스베가스의 슬롯 머신에 진 와일더가 "Pure imagination"을 부르며 등장하는 모습을 봤을 때 '이보다 더 어울릴 수는 없다'며 가진 돈을 다 쏟아넣은 슬픈 경험이 있기도 하다)

다행히 이번 영화는 프리퀄이고, 그 덕에 윌리 웡카씨도 흑화가 덜 된 상황인듯 하다. 대책없이 낙천적이고, 초콜렛만 보면 거의 반쯤 미쳐돌아가는 편집증에, 인간관계가 서툰 모습은 여전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순진함과 우정, 신뢰 뭐 이런 달달한 것들이 잔뜩 끼어있다. 파랗게 물든 바이올렛을 보며 움파룸파에게 "저 아이에게 소화제를 좀 갖다 줘"와 정확하게 똑같은 느낌으로 "저 아이를 주스 짜는 방으로 굴려넣고 압착기로 즙을 짜내"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에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티모시 살라메는 영화 전체를 멱살 잡고 캐리한다. 아직 풋풋하고, 인생의 쓴 맛 덜 본 웡카씨는 보는 사람 역시 달달하고 푸근한 느낌을 받게 만든다. 그 덕에 초등학생 아이들 데리고 가서 함께 보기 좋은 가족영화이기도 하고. 초콜렛 카르텔 3인방은 악역 치고는 포스가 좀 떨어지긴 하지만, 가족영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 정도가 딱 좋은 듯 하다. 어차피 원작에서도 스파이나 보내다가 결국은 웡카의 전지전능 초콜렛에 밀려 사라지는 엑스트라였으니 오히여 비중이 커진 셈이랄까.

온 가족이 함께 보기 좋은 것과는 별개로, 곳곳에서 나타나는 전작의 그림자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특히 웡카씨의 실루엣이 클로즈업 되는 부분에서는 '진 와일더를 데려다 놓고 찍은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흡사하다. 휴 그랜트가 오리지널 움파룸파 이미지로 은근 잘 어울린다는 것 역시 소소한 재미.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과거의 추억까지 되살리며 재미있게 본 영화. 줄거리나 영화의 분위기 모두 과거의 명작을 이어나가는 느낌이라 만족스러웠다. 소소한 소망이라면 '웡카'와 '찰리와 초콜렛 공장' 사이에 해당하는 부분, 즉 초콜렛 카르텔이 복수를 꿈꾸며 돌아오고 웡카가 인간불신에 빠지며 흑화하는 과정으로 한 편 더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힘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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