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미나와 감자 먹는 사람들
야스미나와 감자 먹는 사람들 / 볼테르 마나에르 지음, 이희정 옮김. 밝은미래(2021)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사람들, 특히 채식주의자들은 욕먹기 딱 좋은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기존에 누리던 것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에는 격렬한 반발이 따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는 어찌보면 자신의 이념과 주장을 제대로 '포장'하지 못한 데에도 책임이 있다.
축산농가에서 동물들 풀어주는 행동은 마치 영화 후속편을 억지로 뜯어고쳐 유색인종, 성소수자, 여성의 키워드를 모두 충족시키는 주인공을 들이미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고기 먹는 것을 무시무시한 범죄로 몰아가는 것보다, 매력적인 채식주의자 주인공을 내세우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 아닐까 싶다.
마치 이 책 처럼.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채식주의자(!) 여자(!)아이가 아빠의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옥상 정원에서 식재료를 슬쩍하는데,
알고보니 그 정원은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실험실이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감자튀김을 만들어내는 악덕 거대 기업의 사장과 대결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다.
재미있는 건, 여기서 악역은 누구나 반감을 가질법한 기업형 / 유전자조작 / 독점 키워드를 섞어넣은 반면
조연으로 등장하는 관행농법(화학비료와 농약을 치는) 농부는 그닥 악한 모습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음식 역시 마찬가지로, 아빠가 일하는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감자튀김이 엄청난 유해물질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다만 야스미나가 만드는 "쿠스쿠스와 당근, 서양배와 호박으로 속을 채운 가지 요리"가 엄청나게 매력적으로 보일 뿐.
기존의 만화처럼 딱딱하고 네모난 컷을 나눈 게 아니라, 마치 미술 작품처럼 화려하고 다채로운 조각 그림이 페이지를 가득 채운다.
길가의 먹을 수 있는 잡초를 뜯던 씩씩한 여자 아이는 거대 기업의 악덕 사장에게 유쾌하게 맞서 싸우며 한 편의 경쾌한 모험 활극을 벌인다.
다 읽고 나면 "이것이 채식주의자의 미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표지 바로 뒤에서부터 펼쳐지는 수많은 종류의 감자 그림을 보며 "오늘 저녁 반찬은 감자 요리다!"라는 말도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