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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Concert_공연

북 오브 몰몬: 신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by nitro 2019.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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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공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영어 듣기에서만큼은 미국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듣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아프리카 방송국이 인터넷 개인방송의 절대 강자였던 무렵, 주구장창 심슨 가족이나 프렌즈 전 시즌을 무한 반복해서 틀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심심하면 들어가서 보곤 했던 것. 처음에는 자막에 집중하다가 2회차, 3회차를 넘어가면 내용이나 대사를 대충 외울 정도가 되면서 영어 듣는 귀가 트이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영상물 중의 하나가 바로 사우스 파크.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꼬맹이들이 싸돌아 다니며 사회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데, 심슨 가족이 대상을 막론하고 돌려 까는 걸로 유명하다고는 해도 사우스 파크의 하드코어한 풍자에 비하면 그 앞에 붙은 전체연령가와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딱지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그 덕에 다른 영상물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찰진 영어 욕설이나 비속어 어휘력을 늘리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북 오브 몰몬 역시 보기 전부터 기대가 많았던 뮤지컬이었다. 사우스파크의 제작자들이 만든 또 하나의 종교물.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사이언톨로지(미국의 사이비 종교단체)가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것을 봤던지라 몰몬교는 또 어떻게 다이나믹하고 스펙타클하게 까댈 것인지 궁금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사실 몰몬교가 미국 내에서 갖는 이미지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좀 허황된 면은 있지만 그래도 기독교 기반이고, 교리나 신도들의 행동도 (유타전쟁 이후 일부다처제가 폐지되면서) 크게 이상한 점은 없으니까. 다만 검은 바지에 하얀 셔츠, 검은 넥타이를 매고 두 명이서 팀을 이뤄 돌아다니며 지나가는 사람 붙잡거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하는 일이 우리나라로 치면 '도를 믿으십니까'류의 전도 활동인지라 좀 귀찮은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는 있는 듯 하지만.

그래서인지 아프리카로 전도 활동을 나가게 된 케빈과 아놀드가 겪게 되는 각종 고난과 모험 활극은 사우스파크의 잔인하기까지 한 조롱과는 거리가 좀 있다. 가난과 기근은 기본 사양으로 깔고 들어가는 가난한 우간다 촌동네에서, 사방팔방에 에이즈가 난무하고, 거시기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무장 반란군은 시시때때로 쳐들어 와서 여자들을 강제로 할례시킨다고 을러대는 판국이니 마을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신은 엿이나 먹어라"는 노래를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이 모든 지옥같은 광경이 폭력과 욕설 낭자하는 사우스파크 스타일도 아니고, 냉정한 현실을 반영하는 다큐멘터리 필름 스타일도 아닌, 보는 사람 배꼽 잡게 만드는 블랙 코미디 형태로 등장한다는 게 대단한 점이다. 

극 자체는 뛰어난 노래나 연출로 관객을 사로잡기보다는 쉴 새 없이 빵빵 터지는 유머로 사람을 웃기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뛰어난 가창력이 필요하다거나 정교한 안무가 빛을 발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화려한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취향에 맞지 않을지도. 그 대신 노래 가사 한 마디 한마디가 다 촌철살인. 

하지만 이 뮤지컬은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종교가 갖는 그 허구성에 대해 지적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러한 허풍과 거짓말들이 실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조심스레 묘사하기 때문이다. "군벌들이 횡단보도 건너는 것을 도와주고, 골목마다 적십자가 배급 밀가루를 나눠주는" 지상천국 솔트레이크 시티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여주인공을 보며 처음에는 그 우스운 가사에 폭소가 터져나오지만, 노래가 계속될수록 그 거짓말이 어두운 현실에서 희망을 붙잡고 살아가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대다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는 천국의 모습과 그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그래서인지 몰몬교측에서도 이 뮤지컬에 대해 신성모독이라며 분노하기보다는 "뮤지컬을 봤으니 이제 몰몬교에 대해 제대로 한 번 알아보세요"라고 광고를 낼 정도. 다만 대놓고 "하나님 엿먹어!"를 부르짖는 뮤지컬에 이런 관대한 반응을 기대하기란 우리나라 기독교 특성 상 상당히 어려운 노릇인지라 우리 나라에 라이센스 계약해서 들어가기란 쉽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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