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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무협&판타지

위저드 스톤

by nitro 2019.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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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르 소설 중 상당수는 관성으로 읽게 되는 성향이 강하다.

처음에는 독특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2~3권 정도 나오면 이야기거리가 떨어지던가 필력이 딸려 글이 무너지던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읽던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풀려나갈지, 거의 짐작은 하면서도 마치 아침드라마 보는 아줌마 마냥 무의식적으로 계속 보면서 조금씩 지쳐 간다.

소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훌륭한 필력과 탄탄한 설정으로 글을 잘 이끌어나가면 모르겠으되, 그런 축복받은 소설은 얼마 되지 않으니 지치고 지친 끝에 결국은 중도에 하차하기가 십상. 그나마 무료 연재분에서 손절하면 다행인데 100화, 200화 넘게 보아오다가 결국 '아, 이 소설은 여기까지. 이젠 한계다' 싶을 때는 씁쓸한 감정이 솟구친다. 

하지만 간혹 희안한 소설들이 나오는데, 이야기 자체가 치열하거나 흥미진진한 사건이 연이어 등장하며 눈길을 끄는 게 아니라 담담한 필체로 호흡을 길게 가져가면서 독자들의 이탈을 방지하는 케이스다.

이 소설, 위저드 스톤 역시 마찬가지.

주인공인 로이는 깡촌 마을에서 자라는 고아 소년.

마을 전체가 마수를 사냥하며 먹고 사는 사냥꾼 마을이다보니 성질 더러운 사냥꾼 한 명 밑에서 노예 비슷하게 붙어 살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기구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돌멩이가 꿈에서 마법을 가르쳐 주면서 용병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고, 여러 가지 의뢰를 수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점점 더 다양하고 강력한 마법을 배우며 성장하는 게 줄거리.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흔하디 흔한 고아가 흔하디 흔한 기연을 만나 강해지는 다른 판타지 소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굉장히 세심하고 꼼꼼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서사시 보는 느낌이 아니라 일기장 보는 느낌으로 편하고 느긋하게 볼 수 있다는 게 장점. 옆에서 함께 생활하며 지켜보는 느낌이라고 하기엔 좀 오버고, 게임 캐릭터가 천천히 성장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는 느낌이랄까.

또 하나 다른 점이라면 마법의 스케일이 굉장히 소소하고 현실적이라는 거. 다른 소설의 주인공이 마법을 배웠다면 2~3권 즈음에는 세상을 뒤집어 놓을 만한 대단한 마법들을 써먹기 십상인데, 로이는 엄청나게 오랜 기간동안 주력 마법이 장작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불덩이에 불과하다. 보통은 가장 초급마법으로 간주되면서 초반에 잠깐 쓰다가 사용하지도 않는 파이어볼이 여기선 연재 시작하고 무려 2년 넘게 지나서야 겨우 배울 정도.

파워 인플레이션이 심하지 않다보니 그야말로 천천히 성장하는데, 이게 또 글의 느린 호흡과 잘 어울린다. 여기에 주인공의 심성 또한 엄청 착한 것도 아니고, 악당도 아니고, 의지가 강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유부단 의지박약도 아니고... 어딘가 좀 흐리멍텅 한 게 소시민스러운 욕심을 채워가며 조금씩 성장하는 캐릭터이다보니 매 화를 보면서 "뒷이야기가 어떻게 될까? 궁금해 죽겠네"가 아니라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구나" 싶은 느낌. 

그래서 명작이라기보다는 킬링타임용으로 좋은 소설. 보통은 킬링타임용 소설이라고 하면 볼 게 없는데 남는 시간에 할 게 없으니 마지못해 본다는 느낌이 강한데, 위저드 스톤은 그냥 흰 밥 먹듯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포만감을 주는 좋은 의미에서의 킬링타임용 소설이라고 할 만 하다. 예전에 마비노기 게임 하면서 매일 출석 찍으며 일일퀘스트 돌던 느낌이랄까.

작가의 연재 주기가 극악인 것도 단점이기는 한데, 글의 전개가 워낙 느릿느릿하다보니 독자들도 대부분 "이건 뭐 뒷이야기가 미칠 듯이 궁금한 것도 아니고, 잊어먹고 있다가 올라오면 몰아서 보지, 뭐"라는 반응.

아무래도 글 자체가 소소하다보니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고, 나중에 도대체 어떤 식으로 클라이막스를 만들어 낼지, 끝이 과연 나기는 할 건지 궁금한 탓에 함부로 추천하기는 좀 어려운 소설. 하지만 킬링타임이라는 목적에 충실하며 질리지 않고 꾸준히 볼만한 소설을 찾는 사람에게는 위저드 스톤을 한 번 넌지시 권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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