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라는 이유로 가문에서 쫓겨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도관에 맡겨졌던 정교랑.
하지만 서서히 기억을 되찾아 가면서 여러 지식과 강인한 성품을 바탕으로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주고 사업에 성공하는 등 꿋꿋하게 나아가는 이야기.
로맨스 판타지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러기엔 주인공의 감정선이 아직 살아나지 않아서인지 로맨스라고 할 만한 게 하나도 없는게 함정.
그보다는 옛날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스릴러물에 가깝지 않나 싶기도 하다. 본격 스릴러라기보다는 머리를 많이 쓰고 계획을 짜는 셜록 홈즈 스릴러 버전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주인공이 여자인데다가 초반부에는 바보라서 갑갑한 느낌도 들고, 연애사업은 후보는 많은데 진도는 안 나가고 (아예 시작을 안 함), 감정 기복이 싸이코패스마냥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취향을 많이 타는 작품이다.
하지만 또 그런 주인공이기에 약간의 은혜도 잊지 않고 크게 갚으며,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는 자는 절대 용서치 않는다.
"난 권세도 있어요. 당신 같은 사람은 내 눈에 개미새끼 한 마리 만도 못해요. 아무것도 아니죠. 나 같은 사람이 당신 같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죽이는 일에 신경 쓰고 말고 할 게 있을까요? 내가 지금 대청으로 나가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당신을 때려죽인다 해도 누가 날 어찌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의남매들을 몰래 고발해서 감옥에 넣은 사람에게 이런 말을 태연히 하고, 협박을 받은 사람은 겁에 질려 도망치다가 제풀에 죽어버린다. 제갈량이 주유에게 편지 보내서 피 토하고 죽게 만든 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치밀한 계획과 사람 속 긁어놓는 대사가 일품.
중국 소설이라 그런지 정통 무협의 향취도 풍기고, 여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영웅협객 못지 않은 강단도 있고, 여러 중국의 고사(故事)를 보는 재미도 있고, 종종 등장하는 음식 묘사는 거의 먹방 소설급인 덕에 나름 즐겁게 보는 중.
다만 앞으로 주인공이 감정을 되찾고 나면 흔한 로맨스물이 되지 않을까 싶은게 나름대로의 걱정이다.
총평: ★★★★☆ 나름 구무협의 느낌이 나면서도 현대적인 센스가 가미된, 주인공이 여자인데도 협기와 독심이 넘쳐나는 소설. 무협이라기보다는 정통 중국 사극을 배경으로 찍는 스릴러에 가까운 느낌이다. 목이 턱턱 막히는 듯한 초반부를 지나면 각성한 정교랑이 주변 사람들을 혀로 죽이고 살리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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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완결
오래간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없이 페이스를 유지하며 재미있게 본 소설.
왠지 차이나TV의 중국 역사 로맨스 드라마를 본 듯한 기분이기도 하다.
이런 기분이 들었다는 건 작가가 글을 잘 쓴 것도 있겠지만 번역자 역시 열일했다는 증거도 될 듯.
중간에 '좀 너무 급전개 아닌가?' 싶은 부분도 살짝 있었는데 그래도 뭐 날림이라기보다는 호흡이 좀 빨라지는 정도.
하녀에게 무조건 반근이라는 이름을 붙여버리는 주인공, 그리고 이름보다는 '누구씨네 몇째'라고 부르던 당시 호칭때문에
수많은 반근들과 정X랑, 주X낭, 노야, 이노야, 노태야 등의 헷갈리는 명칭이 살짝 압박이기는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맨스물은 아니지만 상당히 손발 오그라드는 꽁냥꽁냥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갈리기도 할 듯.
그래도 이 정도면 개인적으로는 단행본 소장하고 봐도 좋겠다 싶은, 오래간만의 별 다섯개 수준.
총평: ★★★★★ 적절한 비율의 개똥철학과 꽁냥꽁냥과 먹방과 때려부숨의 혼합물. 여기에 중국풍 분위기를 잘 살려낸데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전체적인 퀄리티를 잘 유지했다.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만한 명작"이라고 하기엔 호불호가 좀 갈리겠지만 무료 분량 읽어보고 괜찮다 싶으면 완결까지 따라가도 후회는 없을만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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