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내지는 조선)의 위인들에게 빙의되는 것도 식상해져서 이제는 외국 격변기의 인물들, 그것도 스탈린이나 히틀러와 같은 희대의 트롤들에게 빙의되는 것이 또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 중에서도 2차대전 당시의 미국이나 독일은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못지 않은 타임머신 핫스팟.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대한민국에서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그 다음날 독일군 국방군 소위, 디트리히 샤흐트로 깨어난다.
독일 총통 히틀러가 슬슬 본격적으로 세계정복 시나리오를 가동하던 1937년.
주인공은 3년 앞으로 다가온 2차 세계대전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지만, 현실은 히틀러가 스페인 파시스트 정권을 위해 보낸 콘도르 군단의 일개 소위일 뿐.
남들처럼 머리속에 나무위키 넣어가지고 다니는 것 마냥 역사 지식을 손쉽게, 디테일하게 꺼내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유명한 인물들, 큼직한 사건들만 대략적으로 기억하면서 앞날을 헤쳐나간다.
결국 히틀러를 무찌르지만 그 뒤를 이어 찾아오는 것은 빨갱이 두목 스탈린, 그리고 욱일 제국과의 결전.
그 장대한 역사를, 중간중간 핀란드나 폴란드나 우크라이나나 프랑스, 영국 등 조연(?)들과 함께 엮어서 잘 풀어낸다.
필력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 대단할 것은 없는데 아무래도 사건의 스케일이 크다 보니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행동이나 심리 묘사를 주로 하는 게 아니라 사건의 나열 위주로 소설이 진행되기 때문인 듯.
2차대전 배경의 대체역사 작가의 필수 소양인 '당시의 정치 및 군사적 지식'이 뛰어난데다 사건의 전개가 꽤나 탄탄하게 굴러가기 때문에 꽤나 몰입해서 보게 된다. 캐릭터 역시 무미건조할 수 있는 등장인물들을 개성있게 표현했고.
무엇보다도 주인공 버프로 모든 일을 쉽게 헤쳐나간다거나, 인터넷 연결이라도 된 것 마냥 앞으로 벌어질 일을 월 단위로 기억한다거나 하는 장면이 없는게 큰 장점.
히틀러 사후 약간 분위기가 늘어지는 기분이 드는데, 이건 판타지 소설 주인공이 영주가 되고 나면 경영물이 되면서 루즈해지는 것과 좀 비슷한 맥락인 듯. 발 한번 삐끗하면 그대로 나락행인 전반부에 비하면 국가간 전쟁이 되는 후반부는 아무래도 여유가 좀 있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 정도면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대체역사물 중에서는 수위에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총평: ★★★★☆ 2차대전 대체역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는 반드시 읽어볼만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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