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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Nonfiction_비소설

먹는 인간

by nitro 202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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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메멘토 (2017)

일본의 저널리스트가 세상 곳곳을 여행하며 보고 경험한 인간과, 인간의 먹는 모습.

일본의 송별연에서 먹은 산해진미의 맛이 가시기도 전에 그가 방글라데시에서 마주친 것은 먹다 남긴 음식물 쓰레기에 정가가 매겨져 팔리는 시장이었다. 빈곤함 가득한 아시아 국가들을 시작으로 유럽과 아프리카를 거쳐, 한 챕터를 가득 채운 한국까지. 사람으로 가득한 기차 3등칸에서 먹는 음식에서부터 교도소 식단을 거쳐 수도원의 콩 스튜와 체르노빌의 방사능 묻은 흑빵까지. 세계 곳곳을 둘러보며 음식이 아닌, 음식을 먹는 사람의 모습을 아름답게 혹은 처절하게 그려냈다.

부유한 사람이 배고픈 사람을 보며 느껴야 하는 감정, 일본인으로서 종군위안부 할머니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진솔하게 드러난다.


“굵직하게 울리는 코란의 기도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거리로 흘러나온다. 고기를 먹는 아이들 등 뒤의 쓰레기 더미에는 또 다른 남자아이가 들개, 까마귀와 서로 으르렁대며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음식을 남기는 것이 죄라면, 이 아이들이 그 죄를 씻고 있는 셈이다.”

“내 눈앞에는 육친이 ‘먹혔다’는 사실을 마치 어제 일처럼 말하는 유족들이 있다. ‘먹었다’는 역사를 모르고, 아니, 잊어버리고 싶어 하는 일본과 그들 사이에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거리가 있다. 나는 그저 침묵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의 얼룩고양이는 120엔짜리 고양이 통조림을 하루에 한개 반씩 먹으니까, 한달 식비로 5400엔쯤 든다. 이것이 고양이 통조림 제조 노동자 평균 월수입의 3분의 1이 넘는다는 사실을 나는 타이에서 처음 알았다. 방콕 주변 통조림 공장에 가보니 앞으로는 고양이와 함께 타이 쪽으로 발 뻗고 자지도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녀가 악어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신사가 수염에 음식을 묻히고 뺨을 풍선처럼 부풀리며 분투한다. 핏대를 올리고 머리를 흔들며 음식을 베어 물려고 하는 노인도 있다. 음식이 통과할 때만큼은 마치 다른 생물의 일부처럼 보이는 목구멍의 꿈틀거림. 수천 개의 입과 위장 속에 채워지는 것은 사상도, 주의도, 주장도 아닌 음식뿐이다. 사람이란 너도나도 음식을 먹는 기관이구나. 감동이 밀려온다. 접시가 10만장, 요리사와 웨이터 등 직원이 1200명이라는 이 식당이 완고하게 지키는 자세는 아마도 ‘무제한의 공존’일 것이다. 즉 세상의 무수한 식습관과 음식을 하나하나 존중하고 모든 것을 제공할 테니 부디 싸우지 말고 드십시오, 하는 원칙 없는 원칙이다.”

“독일인의 네오나치가 행동화되고, 그와 동시에 터키인의 케밥 가게가 세포분열하듯 증가하는 것이 통일 뒤에 새로 생긴 현상이다. 네오나치는 고용 기회가 적은 것을 외국인 노동자 탓으로 돌려 방화를 일삼고, 실업자 터키인은 이상한 압박감 속에서 생존의 길을 찾는 것이다. 케밥 가게가 늘어난다. 네오나치는 그 냄새에 반발이라도 하듯 미쳐 날뛴다.(중략) 그런데 되네르 케밥을 터키 음식의 대표처럼 말하면 모든 터키인이 불같이 화를 낸다. 구이 요리인 케밥은 다진 고기로 만드는 아다나 케밥과 쇠꼬챙이에 꽂은 시시 케밥 등 종류가 수십 가지고, 되네르 케밥은 오히려 독일화된 패스트푸드라는 것이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음식을 만날 수 있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말로도,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기막힌 맛에 온몸이 떨렸다. 혀가 춤을 추고 위장이 노래를 불렀다. 살아서 음식을 먹는 행복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뜨거운 수프 한 그릇이었다. (중략) 수프를 먹었다. 보기에는 이렇다 할 특색도 없는, 건더기가 듬뿍 들어간 갈색 시골풍 수프 보그라치라는 것이다. “와, 맛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조금 전까지 석탄 가루로 새까맣던 혀에 푹 곤 소뼈와 향기로운 채소의 맛이 기분 좋게 스며들었다. (중략)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서 이튿날 다시 보그라치를 먹으러 갔다. 여전히 맛있었지만 왠지 전날만큼 감동받지는 못했다. 이날은 일을 하지도, 석탄가루를 먹지도, 땀을 흘리지도 않고 수프를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와이노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런 이름이었다고 한다. 와이노는 미쓰코가 다른 병사와 있으면 묵묵히 기다렸다가 결국 만나지 못하면 다음 날에 또 와서 기다렸다. 가끔 “난 이제 죽어”하고 말했다. 할머니는 와이노가 준 설탕을 따뜻한 물에 녹여 마셨다. 은은하게 퍼지던 단맛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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