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웹소설 전성시대가 찾아왔지만, 그 역사를 따지고 보면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때, 신문에 연재되던 이광수의 ‘무정’이 웹소설의 조상격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당시 무정을 연재중이던 매일신보는 하루라도 소설이 휴재하면 독자들이 우우 몰려와 “우리가 소설을 보려고 신문을 샀지, 기사를 보려고 신문을 산 줄 아느냐”며 항의를 했을 정도였다니 요즘 인기 웹소설 휴재소식에 댓글란이 불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신문소설이나 웹소설이나 짧은 조각글을 매일 연재하며 독자들의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배경과 소재는 당연히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달라졌다.
그리고 그 과정 - 신문물을 깨우친 학생들의 연애담과 게임 속으로 소환된 몬스터 헌터의 모험담 사이 어디쯤에 활극 소설이 있다. 본인의 능력으로 불의를 응징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이 장르는, 1980년대를 주름잡은 김홍신의 ‘인간시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다.
이 소설, ‘코리안 네트워크’ 역시 활극 소설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 특수부대 출신 고려인인 강혁이 활약하고, 배신당하고, 복수하고, 여러 여인들과 얽히는 내용이다. 군인, 사업 브로커, 로비스트, 명품 재활용 센터 설립자, 사회복지사, 등의 직업을 두루 섭렵하며 정치인, 재벌, 조폭 등을 응징한다.
“미향의 민 마담에게 나를 꼭 보고 싶다고 했다던데.”
“강혁이라고 합니다. 서초구에서 사업을 하기로 해서 조 여사님께 미리 인사드리려고 누님에게 염치없이 부탁했습니다.”
“나같이 힘없고 백 없는 여자가 무슨 도울 일이 있다고. 그런데 무슨 사업을 하는데?”
“서초구 재활용 센터를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내내 웃음을 잃지 않던 조영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쉽게 말해 고물 장수였다.
“사람을 잘못 찾아왔군.”
“조 여사님은 사람을 볼 줄 아시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헛소리나 하는 놈으로 보이십니까?”
조영미는 다시 한 번 강혁의 관상을 봤다. 눈이 빛나는 것은 재치를,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굴곡이 없었고 무엇보다 쭉 뻗은 인중은 의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꽉 다문 입술은 고집도 있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독기가 있었다. 그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사고를 쳐도 크게 칠 상이었다.
조영미가 일으켰던 몸을 다시 낮추며 말했다.
“계속 이야기해 보게.”
글을 읽다보면 선이 굵고 심지가 강한, 전형적인 상남자 스타일의 주인공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주인공도 그렇고, 줄거리도 그렇고 요즘 트렌드를 따라가는 소설은 아니라서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도 있다.
한국 기업에 도움을 주려다가 뒷통수 맞고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재기하는데 똑같은 기업과 협력관계를 구축하다가 또 배신당하는 꼴을 보면 고구마의 차원을 넘어 욕설이 절로 나온다.
고구마가 3회 이상 연달아 나오면 독자들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는 요즘 세태에 미루어 보면 환영받을만한 전개는 아니다. 하지만 좀 더 연식이 있는 독자층이라면, 혹은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라면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를 중얼거리며 주인공이 오뚜기마냥 다시 일어나서 배신자를 응징하는 장면을 즐기게 된다.
가는 곳마다 등장하는 미모의 젊은 여성 사업가 -주로 재벌 딸이나 로비스트, 혹은 기자-들은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한 요즘 모습인 것 같으면서도, 종종 주인공이 내뱉는 “여자가…”라는 발언과 마초스러운 행동은 ‘이거 배경이 20년대인가 80년대인가’ 아리송하게 만들 정도. (한국 대통령이 연임 가능하다는 데서 우주 저편의 평행지구 어디쯤이라고 생각하면 속이 편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여성단체 눈치 안보고 할말 다 내뱉으면서도 정작 행동은 “여자는 무조건 지켜줘야지”라는 주인공에게 주변 여성들이 다 끌려드는 걸 보면 과거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트코인이나 주식 등 금융업을 중심으로 세상을 집어삼키는 요즘 현대판타지 소설들과는 달리 관광업, 희토류, 광고판, 약수, 탄소배출권, 시베리아 가스관, 우라늄, 비행기 등 보따리상을 방불케하는 다양한 사업 아이템에 손을 댄다. 그 과정에서 한국과 러시아, 중국, 북한의 한국인들을 끌어모으며 각국 정부와 기업인, 마피아들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싸워가며 결국 성공하는 주인공.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그 향수를 떠올리며 여러 나라에 걸쳐 사업을 벌이며 음모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상남자의 일대기를 한 번 읽어볼만 하다.
총평: ★★☆☆☆ 약간 올드한 취향에 마초스러운 주인공. 왠지 김성모 만화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판무림에서 후원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s://www.fanmurim.com/book/756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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