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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상선대 겸 약탈단을 이끄는 옛 왕의 부하, 미치광이 빌이 겪는 파란만장한 모험담.
스케일이 작은 늑대 사냥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덧 가지를 치고 뿌리를 뻗어나가며 대륙을 뒤흔드는 거대한 전쟁으로 이어진다.
전체적인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초창기 판타지 소설의 전개와 비슷하게 흘러가는데 세세한 부분에서 엄청난 필력을 자랑한다.
시론은 킬킬 웃으면서 빌에게 농담을 건넸다.
“결혼이라. 졸지에 대장이 중매를 선 꼴이 됐군.”
“미친 빌이 중매라. 죽은 자의 왕더러 주례 서달라고 할까?”
“대장이 부탁하면 진짜로 오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축가는 귀신늑대가 부르고.”
“그만해줘. 실현될까 무서워.” (중략)
“오랜만이네?”
검은색 긴 생머리에 짙은 파란 눈을 가진 소녀가 술잔을 양손으로 든 채 밝게 웃었다.
완전히 따돌렸다고, 이젠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여자였다.
그녀는 1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전에 봤던 검은 드레스 차림과 달리 이번엔 회갈색의 평상복을 입고 있을 뿐이다.
“뺏는 재주만 가진 줄 알았어.”
그녀의 귀는 여전히 밝았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축가, 정말 내가 불러도 돼?”
시체들이 일어섰다. 늑대들은 모두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쳤다. 부랑자의 죽음에 익숙한 익인(날개달린 인간)들조차도 자취를 감췄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체들이 북쪽으로 달리지 않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셀레스테는 모든 전력을 상실했다.
‘잡아먹힐 거야!’
전신에 화상을 입은 총병의 시체가 걸었다. 위턱이 사라진 늑대가 걸었다. 가슴팍이 뭉개진 창병이 걸었다. 목이 부러진 익인이 걸었다.
죽은 자의 왕이 왔다.
아기자기한 맛이 필요할 때는 가벼운 웃음을 자아내는 코믹한 서술이 들어가고, 필요할 때는 손발이 오그라들면서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장엄한 묘사가 치고 나온다.
3권 분량 (95화)에서 끝나는 것이 너무나 아쉬울 정도. 그 덕에 유료화가 되지 않아 누구나 볼 수 있는 명작이기는 하다.
총평: ★★★★★ 미친 필력의 명작. 요즘 트렌드에 비하면 좀 무겁고 호흡이 긴 느낌이 있지만 그만큼 깊이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 1세대 판타지 소설 좋아하던 사람이라면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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