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Une Gourmandise /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홍서연 옮김. 민음사 (2018)
세계 최고의 요리 평론가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지나 온 맛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이야기.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한 그의 여정은 대다수의 독자가 예상치 못했던 결말을 맞는다.
하지만 그 전체적인 이야기보다도 더 매력적인 것은 각 장의 요리와 맛에 대한 묘사, 맛 뿐 아니라 그와 연결되어 맛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가 관능적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날것. 그것이 조리하지 않은 재료를 야만적으로 먹는 것으로 요약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근거 없는 일인가! 날생선의 살을 베는 것은 돌을 자르는 것과 같다. 초보자에게 대리석 암괴는 하나의 덩어리로 보인다.그는 끌을 아무 데나 대고 찍지만 돌은 그 전체를 유지하고 연장만 손에서 튀어오른다. 유능한 석공은 재질을 안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균열이 누군가가 드러내 주기를 기다리다가 그의 돌격에 굴복할 곳을 꿰뚫어본다. 거기서 그는 일 밀리미터도 틀리지 않고 형태가 어떻게 나타날지 벌써 짐작하고 있다. 단지 무지한 자들만이 조각가의 의도에 따라 형태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조각가는 반대로 그것을 드러낼 뿐이다. 그의 재능은 형태를 창조해 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것을 나타나게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콜빌 농가의 몇백 년 묵은 나무 앞에서 나는 일생에서 가장 훌륭한 식사 중 하나를 경험했다. 음식은 단순하고 맛있었지만, 굴과 햄과 아스파라거스와 영계를 부차적인 것으로 제쳐 놓아도 좋을 만큼 내가 삼킨 것은 그들의 노골적인 말들이었다. 거칠지만 젊은 진솔함 때문에 따뜻한 이야기. 나는 말들을 배부르게 먹었다.”
“PMG(Pour Ma Goule: 내 입으로 갈 것). 그는 그 스카치 위스키를 스코틀랜드 최고의 양조업자 중 하나에게서 주문했다. 그는 보통 손님들에게는 이 지역에서 구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스키를 대접했다. 하지만 그 스코틀랜드 산 위스키에 비하면 통조림 토마토를 채소밭에 있는 그의 자매와 비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중략) 그 후 나는 내가 식사한 모든 레스토랑 주인들이 그들의 솜씨가 만들어 낸 가장 볼품없는 작품만을 식탁 위에 깔아 놓은 것이 아닐까, 그들 요리의 내실에 죽을 운명을 가진 자는 공유할 수 없는 신적인 식량을 자기 몫으로 감춰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나 의심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무척 좋아한다. 우유, 지방, 인공 향료, 과일 조각, 커피 콩, 럼주가 잔뜩 든 차가운 크림, 바닐라와 딸기 또는 초콜릿이 층을 이룬 벨벳처럼 부드러운 이탈리아 젤라티. 거품 낸 생크림, 복숭아, 아몬드, 온갖 시럽이 무너질 듯 푸짐히 얹힌 아이스크림 컵. 섬세하면서 동시에 끈끈한 매혹적인 옷을 입은 단순한 아이스 바. 그리고 마침내 소르베. 아이스크림과 과일의 성공적인 결합. 입속에서 빙하 한 줄기로 흘러 사라져 버리는 견고한 음료. ‘소르베’라는 단순한 단어에 이미 전 세계가 구현된다. 연습 삼아 큰 소리로 말해 보라. “아이스크림 먹을래?” 그 다음 곧바로 연달아 말해 보라. “소르베 먹을래?” 그리고 차이를 느껴 보라. 남들이 아이스크림만을 생각하는 데에서 소르베를 제안하는 것은 이미 가벼움과 세련됨을 선택한 것이며 폐쇄된 지평선에 갇혀 무거운 땅을 걷기를 거부하고 공기 같은 시각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렇다, 공기 같은. 소르베는 공기 같다. 비물질적이다. 그것은 우리 온기에 접촉하여 아주 조금 거품을 낸 다음 정복당하고 압착되고 용해되고 목 안에서 증발하며, 흘러간 과일과 물의 매력적이고 어렴풋한 추억만을 혀에 남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이 책이 친절하지는 않다는 것. 이는 단순히 프루스트를 연상시키는 길고 숨가쁜 말의 향연 때문만이 아니라, 다채롭게 묘사되는 요리와 맛과 프랑스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심도 깊은 이해가 불가능한 용어들 때문이기도 하다.
포토푀, 샤쇠르, 블랑케트, 코른 드 가젤, 라타투이, 콩포트, 마리아주, 테흐와, 비에누아즈리, 타진, 칼바도스 플람베, 사쉐 산 백포도주, 대구를 곁들인 아그리아 마케르…
비록 주석이 달려있지만, 평소에 프랑스와 요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공감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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