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해녀들의 섬 / 리사 시 지음, 이미선 옮김. 북레시피 (2019)
"황금빛 조개와 은빛 전복들." 그녀가 노래했다. "그것들을 전부 따게 해주세요" 우리가 화답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접하게요." "그가 집에 온다면요."
초보 해녀가 바위에서 전복을 따낼 준비가 되려면 몇 달이 걸릴 수 있다. 전복은 혼자 있을 때면 영양분 많은 바닷물이 흘러들어와 그것을 둘러쌀 수 있도록 껍질을 바위에서 떨어뜨린다. 그러나 놀라면, 설사 큰 물고기가 지나가면서 만든 해류 때문에 놀랐다 해도, 전복은 바위에 찰싹 달라붙어버린다. 그러면 단단한 껍질이 안에 있는 전복을 모든 약탈자들로부터 보호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전복에 접근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빗창 끝을 껍질 밑에 집어넣은 다음 한 번의 신속한 동작으로 전복을 홱 튕겨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복이 빗창에 달라붙어서 그것을 바위에 고정시켜버린다. 그렇게 되면 빗창이 해녀의 허리에 묶어놓은 끈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해녀는 바위에서 떨어져 나올 수가 없게 된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서만 전복으로부터 도망쳐서 공기를 찾아 표면에 도달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남겨두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거의 매일 내장까지 다 넣어서 만든 전복죽을 먹었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가장 영양가 있는 음식이고 또한 그 맛을 좋아하도록 아기들을 훈련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곧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물옷의 옆을 묶었던 끈을 느슨하게 묶었다. 우리는 아기가 "바다 한복판에서" 태어나기를 바랬다. 그것은 아기들이 첫 숨을 배 위에서 쉬거나, 우리가 바닷속에 있을 때 나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돼지는 깨어서 음식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곧 그의 매일의 목표는 식구들의 엉덩이에서 나오는 것을 받아먹는 일이 될 터이다. 그러면 나는 돼지에게 나오는 것을 모아 밭으로 가져가서 비료로 사용할 것이다. 몇 년 후에는 이 돼지가 혼례식이나 장례식, 혹은 조상 숭배(제사)를 위해 도살될 것이다. 돼지는 우리에게 의존하고, 우리는 돼지에게 의존하는 끝없는 순환이 이루어졌다.
"준리는 항상 돼지 순대를 좋아했어." 도생이 말했다. "이렇게 얇게 썰어놓았으니 각자 몇 점씩은 먹을 수 있을 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시어머니를 매우 잘 알게 됐다. 그녀는 순수하게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준리가 대학에서 첫해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는 것은 큰 행사여서 나는 우리 돼지 중 한 마리를 잡는데 동의했다. 오늘 밤 축하행사를 위해 돼지의 모든 부분을 남김없이 쓸 터이지만 순대는 준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쌍둥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도생은 증손자들의 응석을 받아주는 것을 좋아했다. "또 뭘 만드셨어요?" 내가 물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돼지 뼈와 고사리, 파를 넣고 찌개 육수를 만들고 있다. 국물이 진해지도록 보릿가루를 넣어서 잘 저어보렴. 그런데 명심할 것은......" "덩어리지지 않도록 계속 저으라고요. 저도 알아요."
"이 바닷가에 먹을 게 있나요?" 어머니가 이렇게 물으며 모임을 시작했다. "제주에 있는 모래알보다 많은 먹을거리가 있지요." 도생이 노래하듯 말했다. "우리에게 바위 대신 많은 모래가 있다면요." "스무 개의 달보다 더 많은 먹을거리가 있어요." 다른 여자가 소리쳤다. "우리에게 스무 개의 달이 있다면요." "우리 할머니 집에 있는 오십 개의 항아리 안에 들어있는 것보다 더 많은 먹을거리가 있어요." 너무 어려서 과부가 된 여자가 가세했다. "할머니에게 오십 개의 항아리가 있다면요." (중략) "이 바닷가에 먹을 게 있나요?" 내가 계원들에게 물었다. 전형적인, 과시성 대답이 되돌아왔다. "우리 밭에 있는 돌들보다 더 많은 음식이 있어요. 우리 밭이 있다면 말이에요." "내 자동차에 채울 기름보다 더 많은 음식이 있어요. 내 자동차가 있다면 말이에요." 준리는 그 대답들을 공책에 받아 적었다.
공자는 여자들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의 사상에 따르면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적에 나는 어머니를 따랐다. 결혼해서는 남편과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 그리고 남편이 죽은 뒤로 지금까지 줄곧 내 유일한 아들은 내 말을 따라야 했다.
"남자는 누군가가 항상 돌봐줘야 해요." 한 여자가 말했다. "혼자 사는 남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어느 누구도 하도에서 혼자 살고 있는 남자를 단 한 사람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남자들은 자기 어머니와 살거나 아내, 혹은 (딸)자식들과 같이 살았다.
"나는 죄가 없어. 그들이 나를 죽였어. 그러나 나는 용서했어."
제주도 해녀의 삶, 그리고 제주가 겪었던 일제강점기와 6.25, 4.3 사건 등 굵직한 역사의 파도가 함께 엮여 진행되는 소설.
중국인 증조부를 둔 미국인 작가가 제주도에 대해 얼마나 잘 나타낼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특히 영어 원서를 번역한 소설인지라 읽을 때 약간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
하지만 펄벅이 대지를 썼듯, 한 걸음 떨어져서 보기에 더 잘 보이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관찰 대상에 충분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해녀의 딸로 태어나 해녀로 성장하고 해녀로 늙어가는 주인공 영숙, 그리고 주인공 평생의 단짝이자 증오의 대상이었던 미자.
두 여인의 삶을 통해 보이는 제주도 근현대사의 슬픔과 삶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