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 김서령 지음. 푸른역사 (2019)
“어매요, 배추적을 한 두레 구울까요?”
큰으매가 나이 들어 이가 상한 것이 오로지 엄마의 죄라는 듯 송구스러워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처녀들은 “밀가루는? 들기름은? 동솥뚜껑은?” 해가며 척척 적 구울 채비를 마친다. 한쪽에선 물을 끓여 날배추를 데치고 한쪽에선 밀가루를 후리고(개고) 또 한쪽에선 솥뚜껑에 들기름 칠할 무를 깎는다. 부엌에서 싸릿가지 꺾는 소리가 두어 번 타닥 탁 들리고 부엌 쪽 광창이 훤하게 밝아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대나무 채반에는 김 나는 배추적이 서너 장 척척 얹혀 나온다. - p13
생속의 반대말은 썩은속이었다. 속이 썩어야 세상에 관대해질 수 있었다. 산다는 건 결국 속이 썩는 것이고 얼마간 세상을 살고 난 후엔 절로 속이 썩어 내성이 생기면서 의젓해지는 법이라고 배추적을 먹는 사람들은 의심 없이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속이 썩은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먹는 것이 배추적이었다. 날것일 땐 달았던 배추도 밀가루를 묻혀 구워놓으면 밍밍하고 싱거워졌다. 생속을 가진 사람은 배추적의 맛을 몰랐다. 배추적을 입에 넣어 “에이 뭔 맛이 이래? 싱겁고 물맛만 나네!” 하면 자기 속이 생속이라는 고백이 었다. 곱게 자란 처녀들이 그랬고 남자들도 대개는 그랬다. - p17
난젓은 일단 입에 들어가면 침이 확 돌고 시원하고 달았다. 요리에 설탕을 쓰기 시작한 건 대중식당이 늘어난 시점과 비슷한 것 같다. 식당 요리란 게 원재료에서 우러나는 단맛을 충분히 내기 어렵기에 대신 양념에다 설탕을 푹푹 퍼넣었다는 혐의가 짙다. 집에서 만든 음식에 설탕이란 어림없었다. 설탕의 해악을 파악해서라기보다 설탕이 내는 경박한 단맛을 모두들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설탕이 전혀 없어도 온 식구들이 걸핏하면 달다고 말했다. 무가 달고 명태가 달고 간장이 달고 마늘이 달고 멸치젓갈이 모조리 달았다. 그건 겉으로 드러나는 사탕수수의 단맛에 비해 얼마나 은근, 심오한 단맛이던가. - p178
나 어릴 적 감자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냥 쪘다. 뜨거운 감자를 한 손에 들고 얇게 껍질을 벗겨나갈 때의 그 그리운 포만감을 어찌 잊을까. 국을 끓일 때도 껍질을 차마 칼로 깎진 않았다. 껍질에 묻어나는 살점을 허비할 수 없어 한쪽이 닳은 녹슨 칼로 겉껍질을 살짝만 지워냈다. 여름밤 평상에 누워 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올려다볼 때 내 한 손엔 늘 껍질째 삶은 피감자가 들려 있었다. 다른 한 손엔 꽃 속에 갇힌 벌이 별처럼 잉잉거리는 호박꽃 초롱이 들려 있었다. 별과 벌과 감자를 연결하며 하늘에선 간헐적으로 별똥별이 휘익휘익 떨어져 내렸다. - p241
음식 이야기는 많고, 옛 추억에 얽힌 음식 이야기 역시 많지만, 그 이야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새기며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책은 많지 않다.
삶은 감자 하나 쥐고 평상에 누워 별똥별을 보는 모습은 가히 알퐁스 도데의 별에 비견할만한 문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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