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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무협&판타지

현대판타지 소설 리뷰: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갱신)

by nitro 2022.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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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사회 교과서에서 '정당'의 정의를 '정권을 잡기 위해 모인 단체'로 규정하는 것을 보며 실망한 적이 있다.

'정당의 목표는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하는 것이 아니었던가?'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고, 자신이 옳다고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권력을 잡을 필요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정치라는 행위 자체가 제한된 자원,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돈과 권력을 적재 적소에 배분하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정치인은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뒤쪽으로는 협박과 협력, 설득과 뇌물, 이중계약과 경쟁을 밥먹듯이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를 소재로 하는 대다수의 소설은 상당히 판을 쉽게 짜 버리는 경향이 있다. 

주인공 버프 받아서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는 거야 그렇다 쳐도, 그 해결책이 정치적 해법이 아니라 다른 힘, 즉 돈이나 폭력이나 초능력인 경우가 많은 것이 그 반증이랄까.

예를 들자면 주인공의 앞길을 가로막는 부패한 정치인이 있다면, 초능력으로 그 정치인의 약점을 잡아서 물러나게 한다거나 쥐도새도 모르게 묻어버리는 쉬운 해결책이 너무나도 많이 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는 게이트가 열려 괴물들이 난무하고 이 와중에 초능력자들이 대거 각성함에도 불구하고 굵직한 사건들은 언제나 정치적으로 해결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주고 싶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던 와중에 우연과 노력이 겹치며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주인공, 한승문.

그러나 불행하게도 임기 첫날에 여의도 하늘에 게이트가 열리며 온갖 괴수들이 떨어져 내린다.

박진감 넘치는 여의도 탈출이나 그 후로 각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쁘지 않지만,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그 이후로 권력을 잡기 위해 날뛰는 인간 군상들과 그 사이에서 줄타기 하며 정치적으로 힘을 키우는 주인공의 행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프레임 만들기, 네거티브 전략, 공천권 미끼로 낚시하기, 철밥통 지켜주기 (혹은 깨버리기), 어리버리한 헌터나 기존의 재벌들 사탕발림으로 꼬시기 등 다양한 정치적 해법이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겉으로 점잖게 대화하는 모습의 속내를 까발리는 묘사가 백미. 예를 들자면...

"국회에 신설될 괴수대응 특별위원회에서는 이번 사태에 관한 비현실적 현상들에 대한 법안을 주로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해석: 괴수대응 특별위원회는 존나 쎌 것 같은데.

"마석을 국가 전략자원으로 지정하면 국내 업계는 정부가 잡는 겁니다." 모든 의원들이 방긋 웃었다. 해석: 규제 풀어주고 기업에게 뭐 받아먹을 수 있다. 

"의원 내각제로 개헌을 하는 방향은 어떻습니까?" 해석: 걍 의원들 대가리가 총리 해먹자! "12명 가지고 무슨 개헌입니까! 국민들 정서에 맞는 방향으로 논의를 해야지요." 해석: 지금 대통령 민주당이제? 장관들도 다 민주당이제? 근데 지금 니가 의원들 중에 총리 뽑자는 건 공화당 의원이 대빵 해먹겠다는 거 아이가? 

"일단 식품부 장관이 법률상 대통령 권한대행 확정입니다. 헌데 모종의 압력으로 자진 사퇴했고." 해석: 얘는 차재균(국방부차관)이 이미 보내버렸고. "국토부 장관 또한 지병을 호소하며 요양원에 입원했습니다." 해석: 얘도 차재균이 보내버렸네? 결국 이름 두 개가 전부 지워졌다. 양판석이 껄껄 웃었다. "이야, 이거 참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해석: 차재균 이 새끼, 우리 겐세이 치는데?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왠지 우리나라 국회의원 및 정치'꾼'들이 욕먹어가며 하는 행동이 왠지 고레벨의 정치적 노림수가 가득한 행위로 보이기도 한다.

참 재미있게 읽는 중인데, 정치적인 측면에 워낙 충실하다보니 괴수와 초능력자는 이 글에서 문제와 해결책이 아니라 정권을 잡기 위한 변수 정도에 불과하고, 그러다보니 정작 요즘 대세인 판타지 독자들에게는 크게 호응을 얻지는 못하는 듯. 아무래도 "괴수! 때려잡고! 마석! 흡수해서 강해지고! 더 큰 괴수! 때려잡고!" 이런 단순하지만 호쾌한 패턴에 비하면 시원하게 밀어붙이는 카타르시스가 좀 덜 한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판타지의 해결책보다 오히려 현실의 해결책에 가까운 정치질, 초능력 대신 눈치 보며 머리 굴려서 이 사람 비위 맞추고 저 사람 뒷통수 쳐서 일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재미를 찾고 싶다면 강력 추천할만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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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5일 갱신

처음부터 음식이 꾸준히 맛없는 레스토랑은 그냥 나오면 된다.

처음엔 맛있다가 뒤쪽 코스는 별로인 레스토랑은 아쉬움이 남는다.

음식은 맛있는데 중간 코스부터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더니 급기야 한 시간을 기다려도 음식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분노가 남는다.

올해 초부터 연재 주기가 뜸해지더니 이젠 재개할 낌새도 안 보인다.

레스토랑에서 저러면 '드신 음식은 돈 안 받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소리를 들을텐데, 이미 결제한 소설은 환불받을 길이 없구나...

총평: ☆☆☆☆☆ 용두사미가 용 반마리보다는 낫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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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달리기란 쉽지 않다.

다시 달린다고 해도 순위권에 들기란 더욱 어렵다.

소설 연재도 마찬가지. 매일매일 이어지던 연재가 단 며칠이라도 끊어지면 독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글의 흐름부터가 난장판이 되기 십상이다.

연재 주기 변경이나 잦은 휴재, 장기 연재 중단은 그만큼 글이 잘 안써진다는 증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 역시 5개월 장기 휴재 한 번에 이어서 6개월 장기 휴재가 시작될 무렵엔 '이거 글렀는걸'이라며 포기한 것이 사실.

별점 0점 매기고 완결작 리스트에 올려버렸는데 이게 왠걸.

올해 7월 들어 다시 연재를 재개하더니 50화 분량을 쏟아내며 완결을 지었다.

게다가 다른 장기휴재 소설과는 달리 글이 잘 이어진다. 그만큼 시놉시스가 탄탄했다는 증거일수도.

연재를 실시간으로 따라가다가 끊겼던 나같은 사람들이나 장기휴재가 단점이지, 완결난 마당에 처음부터 정주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을 감안하면 정치물이나 현실적인 헌터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필독서 아닐까 싶다.

흔히 써먹는 돈과 무력 대신, 공천권을 당근으로 제시하고 가족과 측근의 비리를 채찍으로 휘두르는 모습은 색다르면서도 현실감있다.

특히 정치라는 것이 결국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들을 되돌아보며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나는 오랜만에 휴가를 내고 통영으로 내려갔다. 내가 잊고 살던 것들을 떠올리기 위해서다. 그 중 하나는 내 고향의 풍경이었다. (중략) 그러나 모든 이의 추억 속에 있는 고향이 그러하듯, 어느 날 문득 둘러본 고향의 모습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시장에 사람이 없고 바다에 고깃배가 없다. 어촌에 생선이 없고 이따금 보이는 행인들의 얼굴에 활력이 없다. 도시가 완전히 죽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 고향을 죽인 건 언제 어디서 열릴지 모르는 게이트도, 베이징을 수몰시켰다는 S급 해양괴수에 대한 공포도 아니다.

나다,

내가 내 고향을 죽였다.

양판석 정권의 쌀값동결은 어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고, 그 결과 어부들은 헐값에 생선을 정부에 넘겨야 했다. 정부는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굶어 죽는 사람이 거의 없게 만들었지만, 땅이라도 쥐고 있던 농부들과는 달리 어부들은 치명상을 입었다. 

그리고 내 고향을 죽인 정부의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나는 텅 비어버린 수산시장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


게이트와 괴수들이 날뛰며 서울이 함락되는 세상이지만, 도시의 몰락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현실적이다. 이거야말로 정치의 진면목 아닐까 싶을 정도.

그렇다고 이 소설이 너무 무겁거나 지루하지만은 않은 건, 이런 깊은 고민 전후로 튀어나오는 가볍고 재밌지만 현실적인 사이다와 코미디 덕분일듯 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다리 대신 지팡이가 가장 먼저 들어오자 두 차관은 입을 열었다.

"하, 한 시장님...?"

"아, 안녕하십니까, 한승문 시장님."

"예,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한승문이 절뚝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무게 한도 초과를 알리는 경고음이 삑삑댔지만, 누가 감히 서울시장을 쫓아내겠는가?

두 차관의 보좌진이 우루루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공손히 인사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바퀴벌레가 나왔어도 이보다 탈출하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고, 이러려던 건 아닌데."

어색한 혼잣말이 끝나자마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고, 행안부 차은수 차관과 국토부 김경승 차관은 사자와 같은 우리에 갇힌 것처럼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실제로도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었다. 

최근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감지윤 친일파 논란'의 방아쇠를 당긴 건 국토부와 그 산하 외청이 감지윤의 등을 처먹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으니까. 물론 국토부만 욕할 문제는 아니고 일부 지자체 또한 관여한 문제였지만, 애석하게도 지자체는 행정안전부 소관이다. 국토부와 행안부에 속한 두 차관의 보좌진들이 괜히 도망친 게 아니다.

'시X....'

'피해다녔는데 왜 여기서...'

그나마 안면이 있던 차은수 차관이 어색하게 웃으며 한승문에게 말을 붙였다.

"아하하.. 한 시장님. 실례지만 휴가를 가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휴가요. 뭐... 고향을 갔다 왔는데 많이 바뀌었더라구요. 오래있기도 뭐해서 일찍 돌아왔습니다."

"아! 역시 나라 걱정만 하시는군요."

"수십 년 동안 공직에 몸담은 여러분만 하겠습니까?"

한승문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식은땀을 흘리던 국토부 차관에게는 '수십 년간 공직에 있었던 놈들이 일을 이따위로 하냐'고 들렸다.


사실 이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뭐가 그렇게 재밌나 싶을수도 있는데, 글 전체를 관통하며 차근히 빌드업을 쌓아올리고 앞을 가로막는 여러 "정치적"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총평: ★★★★☆ 헌터 정치물중에서는 가히 최고봉이라 할 수 있을 듯. 분야가 분야인만큼 무지성으로 썰고 다니는 사이다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추. 굳이 정치에 깊은 관심이 없더라도 어느 정도 내가 사는 삶이 정치에 영향을 받는다는 걸 실감하는 사람이라면 + 괴수와 헌터가 나타난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갈지 그 현실적인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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