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다 보면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깊이가 있는 글? 짜임새가 좋은 글? 필력이 뛰어난 글? 작가의 철학이 녹아 난 글?
하지만 단테의 '신곡'이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보다 뛰어난 글인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살아남기'보다 좋은 책인가?
얼마나 많은 독자를 만족시키는가, 얼마나 지적 수준이 높은 독자들을 만족시키는가, 얼마나 많은 만족을 주는가는 다 다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덜한 만족을 주는 글들이 영 쓸모없다는 소리 또한 아니다.
무형문화재 장인이 만든 김치와 동네 마트에서 파는 공장 김치가 다르고, 고전 명작 영화와 수목 아침드라마가 다르지만 각각은 나름대로의 소비 계층에게 필요한 수준의 만족을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랄까.
이번에 완결된 국회의원 이성윤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그냥 술술 읽히고 쉽게 쉽게 넘어가는 소설.
앞으로 50년 간 자신의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꿈을 꾼 주인공이 덤으로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까지 갖추며
국회의원이 되어 비리 공무원들을 날려버리고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그런 내용이다.
초반부터 미래에 대한 지식 혹은 독심술로 비리를 잡는다 - 뒷통수를 후린다 - 나쁜놈을 매장시키거나 똘마니로 거둔다 아니면 - 돈을 벌거나 연줄을 잡을 기회를 만든다 - 빽을 사용한다의 연속인지라 첫 1~2권만 봐도 마지막이 어떻게 끝날지 대충 예상이 되는 소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머리써가며 복잡하게 얽힌 소설 내부의 인물 관계나 다양한 갈등에 신경쓰기 싫은 사람에게는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동일한 구조가 반복되면서도 나름 그냥저냥 관성을 타고 완결까지 읽을 수 있었다는 건, 반복되는 내용이라도 지루하지 않고 글이 크게 무너지는 부분 없이 지탱 해 왔다는 반증 아닐까 싶다.
대단히 뛰어나거나 깊이있는 소설은 분명 아니고, 우리나라 정치판에 대한 고증 오류나 극도로 단순화된 인간관계 등 헛점을 찾으려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화 된 글이기에 떡밥 회수나 쓸모없어진 등장인물 손쉽게 쳐내기 등에서는 나름 이득을 본 것도 사실일 듯.
아쉬운 점이라면 아무리 가볍게 읽는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소설 전체에 걸쳐 숙적으로 깔아두었던 라스트 보스가 너무 허망하게 간 거 아닌가 싶은 느낌.
주인공이 이미 미래를 보고 온 마당인지라 초장부터 긴장하며 악당의 앞길을 하나하나 방해해서 아예 싹을 뽑아버렸기에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 내부에서 묘사는 다스베이더 급인데 정작 최후는 스노크 급이랄까. 그러다보니 결말 역시 왠지 급하게 끝난 느낌이다. 용머리에 뱀꼬리라기보단 뱀머리, 뱀몸통에 지렁이 꼬리 정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너무 집중할 필요 없이 그냥 초반에 좀 재미있게 보고, 그런 구조가 반복되는 것을 보던 관성으로 밀고 나가며 지루하지 않게 읽다 보면 어느 새 완결 나는, 그런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다.
초중반부터 '도저히 버틸 수 없다'를 외치며 중도하차하게 만드는 소설이 범람하는 마당에 그래도 이 정도면 킬링타임용으로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그냥저냥 읽을 만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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