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읽다 보면 느끼는 아쉬움 중의 하나는 1세대 창업주들 (유비, 조조, 손권)이 퇴장하면 긴장감이 확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는 그 후로도 수많은 이야기거리들이 있건만, 시청률 떨어지는 드라마 조기종영 시킨 느낌이 들 정도.
그리고 이는 삼국지를 배경으로 하는 다른 대체역사 소설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인이 빙의하건,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군주나 잡장이 회귀하건 간에 막판 보스 3대장만 잡으면 거의 소설 끝나는 분위기인 것이 기정사실.
그래서 삼국지 정훈전은 나름 신선한 전개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정훈은 삼국지 게임 매니아. 새로 나온 삼국지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했는데 이게 그만 현실이 되어버렸다. 로그아웃을 하기 위해서는 천하를 통일해야 하는 상황. 그나마 무력에 능력치를 잔뜩 찍은 덕에 일신의 무공이 고강하고, (다들 그렇듯) 미래에 벌어질 일과 주요 인물들을 꿰고 있는지라 관우와 장비가 유비를 만나기 전에 미리 빼돌려 동생 삼는 것을 시작으로 (주인공이 정훈이라 정관장 삼형제. 한국담배인삼공사가 협찬했나?) 세력을 일구고 경쟁자들을 하나씩 무너트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유비까지 다 잡고 주인공이 천하통일 하겠구나 싶었던 시점에서 망국의 잔당들이 힘을 합쳐 반격을 시작한다는 것. 하후돈, 주유 등 나름 쟁쟁한 인물들이 주군의 원수를 갚고자 서로 손을 잡고 정훈을 상대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세력은 불리해도 나름 뼈아픈 반격을 가하는 등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는다. 일진일퇴를 반복하며 2019년 7월말 현재 무려 500화를 돌파하며 연재중.
조조가 죽은 것이 204화, 유비가 조비를 비롯한 조조의 잔당을 끌어모아 버티다가 죽은 것이 432화인데 아직도 천하통일의 끝이 보이지를 않으니 나름 그 뒷이야기가 오래 이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보니 왜 유비, 조조, 손권이 죽으면 이야기 끝인지도 이해가 된다. 이미 삼국지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세계관으로 자리잡았고, 수 많은 삼국지 기반 소설들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유조손은 언제나 주요 인물로 다루어져 왔다. 그러다보니 독자들에게 있어서 유조손의 중요도는 이미 세계관 그 자체와 다를 바가 없게 된 것. 예를 들자면 조조가 동탁에게 잡혀 죽거나, 유비가 황건적에게 맞아죽어서 조기 퇴장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 소설은 더 이상 삼국지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대체역사 소설이라도 그 세 인물의 비중을 뛰어넘는 이야기 전개는 쉽지 않은 게 문제. 주요인물들 다 죽고 나면 맥이 빠지고, 일단 맥이 빠지니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전투가 계속되어도 '잔당 처리'라는 느낌이지 '천하 일통을 두고 막상막하로 경쟁하는 상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결국 시도는 좋았지만 초반에는 볼만해도 중후반부로 들어서면서 너무 질질 끄는 바람에 전투도 식상하고 글의 전개도 왠지 계속 반복되는 듯한 느낌. 차라리 유비 사망 후 빨리 천하통일 하고 떡밥 회수한 뒤 끝냈더라면 식상하긴 해도 오히려 전체적인 완성도에서는 깔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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