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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무협&판타지

판타지 소설 리뷰: 쥐쟁이 챔피언

by nitro 2020.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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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종합해 보자. 요컨대, 태양신의 성스러운 힘으로 지어진 헬름탑 아래는 사회의 온갖 똥 같은 쓰레기들이 한곳에 모인 변소같은 곳이라는 거네? 심지어 쥐쟁이(랫맨)한테도?"

미하일과 랫시가 동시에 대답했다.

""응!""

"존나 좋아. 완전 내 취향이야."

- "쥐쟁이 챔피언" 중에서


게임 폐인이 얼떨결에 증강현실 게임의 베타테스터로 채용되며 몰입감 쩌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건 이제 저 도로를 가득 메운 이세계 환생트럭만큼이나 흔하다.

소설 주인공의 종족이 마왕, 도적, 괴물 초장이, 악마 등 문화다양성을 엄청나게 중시하는 세태인지라 사람 크기의 이족 보행 쥐 수인인 쥐쟁이(랫맨)가 주인공이 되는 것도 그닥 충격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신진대사가 워낙 활발해서 하루 정도만 굶어도 죽어버리는 설치류의 특성을 잘 반영한, 먹을 것에 그야말로 목숨거는 종족 특성을 잘 살려낸 것은 마음에 든다.

여기에 더불어 3단 우리에 고블린들을 가둬놓고 새끼만 낳게 만든다거나, 트롤을 산 채로 포박하고 살을 조금씩 뜯어먹는 고기 공장으로 만드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굉장히 복잡한 심정마저 들게 된다. 피와 내장이 난무하는 고어 영화와 암탉 가득한 양계장과 어릴 적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돼지를 구멍 뚫린 상자에 넣고 키워서 살이 삐져나오면 계속 잘라먹는다"는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섞인 느낌이랄까.

문장력이 굉장히 우수하다거나 글의 전체적인 짜임새가 잘 구성된 소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꽤나 매력적인지라 흡입력이 있는 소설.

작가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읽으며 느껴지는 분위기는 뒷생각 안하고 (라기보다는 노빠꾸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점점 더 암울하고 디스토피아적인 세계 속으로 주인공이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침식되는 모양새다.

중간중간 로그아웃을 하며 조금씩 쉬어가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내가 무릎을 굽힌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다!"라는 느낌.

100화에 거의 가까워지면서 주인공이 강해지고 새로운 영역으로 이동해서 다 때려잡고, 더 강해지는 패턴이 반복되는 거 아닌가 걱정도 조금 되기는 하는데 이건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

사람에 따라서는 "고블린 학대를 멈춰주세요"라는 피켓이라도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좀 잔인하게 느껴지며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호불호가 갈린다는 건 또 북두의권이나 매드맥스, 폴아웃같은 쌩마초 아포칼립스가 좋은 사람에게는 그만큼 가산점을 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총평: ★★★★☆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가 얼룩말 잡아먹는 장면이 평화롭게 보일 정도로 하수구 똥물에서 서로 뒷통수를 때려 잡아먹으며 "음식! 암컷! 권력!"를 외치는 쥐쟁이 무리를 보고 있노라면...

존나 좋아. 완전 내 취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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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완결.

예전에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을 썼을 때 "더러워서 못 읽겠더라"라는 댓글이 달린 적 있다.

그 의견에 백퍼센트 공감했던 것이, 임신한 고블린이나 사과를 입에 물린 엘프 통구이를 먹는 쥐쟁이가 주인공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싶기도 했던 것.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글이, 비록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판타지 소설로서의 가치가 없는가 하면 또 그건 아니다.

기생충이나 조커가 보기 불편한 영화라고 해서 그 영화들이 못 만들었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마지막 결전이 좀 급하게 진행된 것 같기는 하지만 결말이 전형적인 '그래서 짱짱 쎄진 주인공이 삼처 사첩을 거느리고 세계 평화를 이룩하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엔딩이 아닌 게 마음에 든다.

보통은 연재중에 받았던 별점이 한두개 정도 깎이는 게 일상다반사인데 이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줘서 더 좋은 듯.

한가지 정말 아쉬운 점이라면 이 작가의 본래 필력이나 분위기가 훨씬 더 좋은데 대중성을 확보하려고 일부러 힘 좀 빼고 썼다는 거.

현재 연재중인 다른 작품, "강과 먼지의 왕자"와 비교해보면 스케일이 확실히 차이가 난다.

총평: ★★★★☆ 결말까지 기대했던 대로 (하지만 예상치는 못했던 방향으로) 잘 끝난 작품. 오래간만에 연재 내내 즐기며 따라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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