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들었을 때는 '다른 세계로 날아가 각성하며 부귀영화를 손에 넣고 아름다운 (엘프 혹은 드래곤 혹은 마왕) 아내를 맞이하는 구운몽 스타일 소설 아닌가' 싶었다.
샤방샤방한 딸내미가 귀여운 팻을 안고 돌아다니는 표지 역시 사람 헷갈리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은 굉장히 암울한 세계관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다.
주인공 김주환은 어릴적부터 부모를 잃고 불우한 삶을 사는 인생. 어쩌다 마주친 산타 복장 노인네에게 자신이 먹으려던 김밥을 나누어주자 소원을 빌라고 한다. 외로움에 사무쳐 "토끼같은 마누라와 귀여운 딸이 갖고 싶다"고 소원을 말한다.
그리고 시작된 이세계 라이프. 하지만 시작부터 우리에 갇힌 노예 신세다.
기본 언어팩을 장착시켜주는 다른 소설과는 달리, 말도 통하지 않는 이세계의 외딴 산골마을에 강제로 산지기 사냥꾼이 되어버렸다.
아예 정착시키려는 수단으로 전임 산지기의 두번째 아내에게서 난 딸과, 세번째 아내까지 셋트로 얽힌 상황.
촌장은 그녀가 문 앞에 있는 것을 아는지 말을 계속 이었다.
"문 열 필요는 없으니 그냥 들어. 밤새 회의한 결과 자네의 남편이 정해졌네. 병사들이 데려온 남자야. 그 사람을 우리 마을의 산지기로 받아들이기로 결정이 났어."
리지는 숨을 삼켰다. (중략) 노예가 되는 죄인은 대부분 산적이나 도적, 혹은 살인자들이다. 죄인이 아니었던 남편도 사람을 죽을 때까지 때렸는데, 죄인과 함께 있었던 남자는 오죽할까.
그렇다고 이 아이를 버리고 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추운 산속 오두막에서, 아버지의 눈을 피해 혼자 굶고 있던 이 아이를 버리고 가는 일은 할 수 없다. 차가운 귀리죽 약간이라도 나눠주는 사람이 없던 아이, 다섯 살이 되도록 이름조차 없는 이 아이를 버리고 가는 건,
'나는 못해.'
눈물이 왈칵 나왔다.
학대받던 여자와 아이, 이쪽 말도 못하는데다 평범한 현대인이었던지라 생존 스킬도 없는 남자. 그야말로 암울한 출발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며 체력도 강해지고 마법도 약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하지만 눈에 보이는 적과 몬스터를 순삭하며 쉬운 인생 사는 것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는, 먹고 살기 고달픈 삶이 이어진다.
그래도 그 와중에 외톨이였던 자신에게 주어진 급조된 가족을 돌보며 알콩달콩 살림도 차리고, 조금씩 성장하며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해나간다.
"나는 도로시의 새 엄마지?"
"응"
"그럼 도로시는 내 딸이야."
"어?"
도로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리지가 놀란 것처럼 말했다.
"도로시,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거니?"
"어? 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진짜 엄마는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이미 죽었고, 그래서 도로시한테는 엄마가 없는 줄 알았어.
새엄마가 도로시 엄마였다니, 정말 몰랐다.
머릿속에서 바쁘게 리지의 말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갑자기 정신이 파뜩 들었다.
"말도 안돼!"
"도로시는 내 딸이니까, 나한테 남편이 생기면 그 사람은 도로시의 아빠가 되는 거야."
"아빠?"
도로시는 깜짝 놀라 창밖에 서 있는 주환을 쳐다보았다. 주환이 아빠라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도로시는 주환과 리지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다시 소리쳤다.
"아빠야?"
리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환은 전에 있었던 죽은 아빠랑은 달라. 절대로 우리를 때리지 않아. 우리를 지켜주는 사람이야."
"아빠!"
(중략)
주환은 달려온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도로시가 짧은 팔로 주환의 두꺼운 목을 끌어안았다.
말을 처음 배운 아이처럼, 도로시가 자꾸만 아빠라고 소리친다.
반짝반짝, 아이에게서 별가루가 튀어나와 사방으로 퍼지는 것처럼 보였다.
용사 소환 떡밥도 있고, 중반으로 넘어가며 모험가로 전직하고 좀 쉽게 사는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이 소설의 포인트는 역시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그 속에서 꽃피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 아닐까 싶다.
총평: ★★★☆☆ 고독한 남자가 그토록 원하던 가정을 얻고, 이를 지켜내고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이계 판타지 모험과 잘 어우러지는 소설. 이대로 무너지지 않고 결말까지 전개가 잘 이어지면 별 네개도 가능할듯.
3~4권 분량에서 하차.
초반에는 여러모로 극악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 벅찬 가운데서도 소중한 가족이 생긴 것을 기뻐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중반 넘어서면서부터 주인공 + 펫 파워가 너무 막강해지는 바람에 그냥 흔한 이세계 깽판물에 꽁냥꽁냥 조금 풀어놓은 평작이 되어버렸다.
총평: ★☆☆☆☆ 험난한 세상에서 고생해가며 가족을 지키고 사랑을 키워나가는 부분이 좋았는데 그 재미가 사라지자 급속도로 몰입이 떨어져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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