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황제 / 김희선 지음. 자음과 모음 (2014)
“중요한 것은, 그 즈음부터 인류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혹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대신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에 탐닉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만약 누군가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면 그의 영혼 역시 세상에서 가장 고결할 것임을, 그리고 그의 지능이나 그의 미래, 그 밖의 모든 것 역시 완전무결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덕분에 대형 마트의 식료품 코너가 새로운 명상의 장소로 급부상했는데, 그곳에선 남녀노소를 불문한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당근이나 브로콜리 같은 걸 손에 든 채 존재에 대한 한없이 깊은 생각에 빠져들곤 했기 때문이다.”
라면이 금지된 미래. 27년 동안 라면만을 먹고 살아온 것으로 기네스북 등재 신청을 하려던 노인. 그리고 식음료계의 비화를 취재하던 기자가 풀어낸 이야기가 뒤섞인 단편 소설. SF적인 요소는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SF단편소설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상상의 날개를 펼치다보니 지금 내가 어디에 와 있는건가 모를 지경이 되어서 그런 걸까.
누구나 다 먹던 라면이 왜곡된 증거와 주장으로 인해 기피되고, 그런 사회의 흐름 속에서 역행하던 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해서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고자 하는 듯 하다…라고 감상평을 남기기엔 글이 워낙 가볍게 유쾌하고 시니컬해서 그런 진지한 감상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깊이 있는 깨달음을 남기지는 않지만, 가볍게 재미삼아 읽기 좋은 기발한 상상력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