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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무협&판타지

현대판타지 웹소설 감상: 내가 옳다

by nitro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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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푹 빠져들게 만드는 세기의 명작이 아닌 바에야 대다수의 소설들은 주요 독자층을 갖고 있다.

특히 독자의 나이와 성별에 따라 좋아하는 장르가 급격하게 갈리는 웹소설판은 그런 현상이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난다.

중고등학생에게 회사원 성공담은 하나도 공감되지 않는 다른 세상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고, 30~40대 아저씨에게 드래곤이 깃든 마검으로 보이는 괴물마다 썰어버리는 10대 소년의 모험담은 유치하게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니 잘 쓴 웹소설이라면 잠재적 독자층이 분명하고, 또 그런 주요 고객층에 입맛에 잘 맞는 내용과 전개를 풀어낼 줄 아는 작품이다.

이 소설, “내가 옳다”의 주인공은 40대 이혼남. 일단 제목에서부터 풍겨져 나오는 꼰대의 아우라가 주인공의 설정과 맞물리며 “이 소설은 마누라 바가지에 긁히고 직장 상사에게 쥐어터지는 고단한 중년 남성들에게 바치는 글”이라고 대놓고 외치는 셈이다.

주인공 강석호는 외국계 해운 물류회사의 직원. 하지만 시작부터 코쟁이 외국놈들은 자기들이 헛발질한 손실을 만회하느라 한국지사를 폐쇄하고, 직원들 팔아먹으며 자기 몸보신에만 급급한 사장을 들이받은 주인공은 곧 실업자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주식 뉴스레터의 추천 종목을 구입하다보니 돈이 복사가 되고, 두둑한 주머니를 짤랑거리며 부자 클럽에서 새로 만난 사람과 ‘찐부자’들이 모인다는 술집까지 발을 들이밀게 된다. 

곤경에 빠진 재벌 3세를 구해주려다 어찌저찌 얽히게 되면서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마라(라고 쓰고 평행세계의 LG라고 읽는다) 전자의 임원으로 발탁되는 주인공. 

하지만 배짱을 부리는 것도 망해버린 전 회사의 만만한 사장에게나 가능한 일이지, 평소 눈치 안보고 할 말 다 한다는 강석호도 대기업 임원으로 낙하산 발령이 난다는 데에는 쫄아버릴 수밖에 없다.

“우리 지금 이거 사기 치는 거라고. 일주일도 안 돼서 내가 임원 능력 없다는 게 밝혀질걸? 임원 경력도 없고 그쪽 분야 경력도 하나도 없다고. 그런데 내가 무슨 수로 마라전자에서 임원 노릇을 제대로 해? 개망신은 물론이고 사기죄로 고소당할지도 모른다고!”

십 년이 넘게 직장 생활을 해 온 소시민이라면 당연히 나올수밖에 없는 반응이다. 그나마 뱃심 두둑하게 ‘뭐, 안되면 말지. 다 때려치우고 놀면 되니까’라며 마음내키는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주식 뉴스레터를 통해 수십억으로 불어난 재산 덕분. 

그래서 “우리 마라 전자는 팔성(이라고 쓰고 평행세계의 삼성이라고 읽는다) 전자의 라이벌입니다!”라고 외치는 꼰대 임원에게 대놓고 면박을 줄 수도 있다.

내가 슬라이드를 돌려 others의 팝업리스트를 커서로 가리켰다.
"냉정하게 보시고 생각하세요. 이 뽀시래기 동네에서도 우리가 상위그룹이 아닙니다. 중간입니다, 중간!"
"..."
"세계 시장 점유율 1.3%짜리가 점유율 21% 업체를 보고 우리가 너희 라이벌이다! 그러면 그쪽에서 뭐라 그러겠습니까?"
"..."
"저같으면 비웃겠습니다. 되지도 않는 놈이 헛소리 한다고!"

현실에는 대박 종목만 콕콕 찝어주는 뉴스레터도 없고, 수십억 자산을 갖고 남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도 없으니, 대놓고 다른 임원들 면박주는 낙하산 직원도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디자이너나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뿐 아니라 현장 일선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 저… 위엣것들이 또 삽질하네’라는 생각을 한 번 정도는 해봤을 터. (직장 수준에 따라서는 하루에 한 번씩 하는 생각일수도 있겠다) 마음같아서는 중역 회의실 문짝을 차고 들어가 노친네 멱살을 잡고 “야, 이 월급도둑아!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라고 외치고 싶은 것도 한 두번이 아닌데, 주인공이 그 일을 대신 해준다.

그러면서도 미모의 계약직 여비서와 알콩달콩 썸도 타고, 사업을 확장해서 성공시키는, 그런 이야기.

일단 큰 틀만 놓고 보자면 흔하디 흔한 현대판타지 회사원 성공물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큰 돈을 벌어놓고 시작하는 거야 비트코인이건 주식 대박이건 로또건 수단만 다를 뿐 별 차이가 없으니까. 

하지만 막나가는 소설들이 주인공에게 무작정 큰 돈을 쥐어줘놓고 무지성 기업 쇼핑을 시키는 반면, 이 소설은 사내 정치를 주로 다루며 좀 더 그럴듯하고 디테일하면서도 그 과정을 꽤나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오빠가 적입니까?”
그녀가 말없이 미소지었다.
“제가 오빠한테 가서 말하면 어떡하려구요?”
“그러면 적이 두 명이 되는 거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싱긋 웃으며 성큼 걸어왔다. 다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적이 두 명이 되면 버거울텐데?”
“그래서 손이 두개잖아요? 양 손에 칼 하나씩 쥐고 싸우면 되죠.”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곤 칼을 쥔 듯이 두 손을 장난스레 흔들어 댄다.
“그러고는 한 명씩 찌르는 거죠. 이렇게 푹! 푹!”
그녀가 나를 양손으로 한 번씩 찌르는 제스쳐를 취했다. 씨바! 움찔했다.
“그런데 본부장님, 그거 아세요? 원래 적이었던 사람은 한 번만 찌르고 빼 줘요. 고통없이 죽으라고. 근데 친구였다가 적이 된 사람은 그냥 빼면 안돼요. 이렇게 푹 찌르고!”
다시 날 찌르는 제스쳐를 취했다.
“찔러넣은 칼을 안에서 마구 돌리는 거죠.”
내 배 앞에서 손을 빙빙 돌렸다.
“이렇게. 이렇게. 내장을 다 토막내는 거예요. 그러면 엄청 아프겠죠?”
그러면서 배시시 웃는다. 

왠지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그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히 떠오르는 필력과 작가가 해운이나 물류쪽에서 일한 경험이 있나 싶은 세부 묘사가 큰 장점이다.

반면, 단점이라면 이야기를 조각조각 나눠놓고 보면 재미가 있는데 큰 그림으로 보면 얼개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

“태임씨 대단해!”를 외치지만 아무리 다시 읽어봐도 여주인공이 뭔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해낸 건 없다. 

“요즘 마승진은 대체 뭘 하는 걸까?”라는 주인공의 혼잣말에 백퍼센트 공감할 정도로 주인공을 회사에 낙하산으로 꽂아넣은 회장 아들은 존재감이 없다.

등장인물이나 인간관계, 심지어는 사업 확장에 있어서도 세세한 부분은 잘 그려내면서 전체적으로는 ‘이게 갑자기 이렇게 된다고?’싶은 뜬금없는 부분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단점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데, 일단 각 파트별로 나눠놓고 보면 별 어색함 없이 잘 넘어가는데다가 소설 구성 자체가 꿔다놓은 보릿자루나 어설픈 무리수도 글의 재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게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흩어진 직원들을 끝끝내 다시 불러 모으며 ‘의리’를 강조하는 대기업 임원.
그러면서도 한 번 찍힌 사람은 끝끝내 따라다니며 훼방을 놓으며 복수하는, 쪼잔하지만 그렇기에 더 큰 사이다를 안겨주는 회사원.
잘 진행중인 사업에 똥물을 끼얹는 회사 임원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이라면 출퇴근길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읽기에 꽤 괜찮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총평: ★★★☆☆ 중간중간 허술한 설정이 보이기는 하지만 상사들의 헛발질에 질린 회사원이라면 가볍게 읽으며 스트레스 해소를 할 수 있을법한, 평타는 치는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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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무림에서 후원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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