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왔지만 거듭된 실패로 인해 아내와 이혼하고 대리기사로 일하는 주인공, 강시혁.
요즘 이혼물이 대세라 '이 소설도 나쁜 아내와 이혼한 후 성공하는 권선징악형 소설인가'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 방향이 굉장히 다르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주인공이 요즘 세대의 눈으로 봤을 때, 심지어는 아재소리 듣는 내가 봐도 상마초스러운 쌍팔년도 꼰대 마인드를 탑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 자기가 나쁜 마음을 먹고 추행이라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입이라도 맞추었으면 그 여자가 의식이라도 했을까.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다 착한 것은 아닌데 그렇게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는 것은 여자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다가 헤어진 아내는 그 박과장이라는 놈에게 어떤 흐트러진 자세를 보여서 그렇게 밀착하게 되었을가도 생각해 보았다.
누가 강시혁에게 네까짓 흙수저놈이 그런 고귀한 금수저 중의 금수저에게 사특한 마음을 품느냐?라고 한다면 할 말은 있었다.
"나도 젊은 30대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강시혁은 공연히 신문재벌 장남에게 질투를 느꼈다.
신문재벌 장남인데다 삼방그룹 사위인데 질투를 느끼다니 가당찮은 이야기다. 하찮은 대리기사 따위가 질투를 느꼈다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놈이 미웠다.
강시혁은 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회장이 비서실장을 움직여 관장과 협의해 월급을 조정하라고 했으니 열이 날 만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관장이라는 여자에게 더 밀착할 걸 잘못했네. 다음서부터는 이 여자가 오면 아부를 좀 해야겠어. 높은 사람들이 중요 임무는 자기한테 아부하는 사람들에게 준다고 하지 않던가."
매사가 다 이런식이다. 자존감은 낮으면서 가부장적이고 돈에 굽신거리면서 과거에 대한 후회로 가득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연달아 사업실패하고 아내가 바람나서 이혼한 남자가 갑자기 돌변해서 영웅의 면모를 보일 리 없다. 높은 사람들 비위를 맞춰주며 허황된 상상이나 하는 모습이 제격이다.
그래서 강시혁의 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갑갑하다. 마치 '찌질의 역사'에 등장하는 민기를 보는 느낌이랄까.
다른 사람 비위를 맞춰주려고 너스레를 떨며 어떻게든 조금씩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그야말로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다.
회장님댁 초상을 치르며 편의점에서 사 온 호루라기 불며 주차 정리를 한다던가,
몰던 차가 벤츠로 바뀐 것을 보고 놀라는 외부 고객에게 "어르신같은 분을 모시려면 적어도 이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특별배차를 받았습니다"라며 알랑방귀를 뀌고,
대기업 임원과 법률가들이 회의하는데 차를 내가면서 호텔 보이마냥 괜히 팔에 흰 수건을 걸치기도 하는 장면에서는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시대에 뒤떨어진 소시민적 마인드를 갖고 있음에도 성실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는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과 비슷하게 보인다는 데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동질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이유가 더 중요한데, 바로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는 내용이다. 중간중간 주인공이 뻘소리를 하고 빌빌거릴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 "도대체 이 등신이 어떻게 절세미인 재벌집 상속녀의 남편이 된다는 거지?"
만약 제목이 아니었다면 그저그런 소시민의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단정하고 중도 하차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찌질이가 도대체 무슨 수로 재벌녀의 두번재 남편이 될지, 그리고 그렇게 갑자기 바보온달마냥 결혼에 성공해버리면 그 뒤엔 어떻게 변할지가 궁금해 견딜수가 없다.
전체적으로 글의 분위기가 상당히 올드한데, 그 대신 연령대가 좀 있는 독자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총평: ★★★☆☆ 대여점 세대도 아니고 왠지 신문 연재 소설 시대의 글을 보는 느낌도 들지만, 주인공도 팍팍 지르는 맛이 없이 찌질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소설의 표현대로라면) 여자 한 명 잘 낚아서 팔자 피게 될지 궁금해서라도 따라갈수밖에 없는 소설.
23년 12월 완결.
대략 270화 전후로는 좀 무리가 있는 전개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럭저럭 그럴듯한 흐름이라는 느낌.
문제는 그 이후. 재벌집 딸내미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귀는 데 성공하는 부분까지는 괜찮은데 주인공을 거기에 걸맞게 격을 올려주려다보니 무리수를 두게 된다.
차라리 서로 사랑하는걸 확인한 다음 휙 건너뛰어서 결혼식 올리고 에필로그 형식으로 빠르게 넘어갔어도 좋을텐데
바보온달 성장기에서 어설픈 경영물로 넘어간 느낌이라 아쉽다.
총평: ★★☆☆☆ 처음의 색깔을 그대로 가져갔으면 좋았을텐데 후반부에서 본격 사업 경영물로 억지 변신하다가 종결. 그래도 이런 류의 올드한 느낌이 나는 소설은 흔치 않아서 취향만 맞는다면 옛날 신문 소설 보는 느낌으로 보기엔 좋을 듯.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