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타지는 잘난 주인공의 향연이다.
돈버는 재주는 너무 흔한 나머지 식상할 정도고, 천상의 노래 실력, 스포츠 스타, 손대는 것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감독, 천재 배우 등 예체능계에서도 먼치킨 주인공들이 쉴새없이 튀어나온다.
다만 이런 장르에도 명백한 한계가 있는데, 소설 속에서는 모든 사람이 눈물 흘리며 찬양하는 그 실력을 독자가 실감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그나마 스포츠 선수들은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다. 시속 170km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나 열 한명을 제치고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축구선수와 같이 객관적인 지표를 들이밀 수 있으니까.
반면 신들린듯한 연기라거나 불후의 명작 반열에 오를만한 그림, 듣는 사람 혼을 빼놓는 노래는 (당연하게도) 글자를 읽는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다만 소설 속의 대중이 환호하고 열광하는 모습만으로 간접 체험을 할 뿐이다.
이는 먼치킨 작가가 등장하는 현대판타지물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설 속 주인공인 작가나 독자가 읽는 웹소설이나 똑같이 문자라는 매개체를 사용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노벨문학상을 손쉽게 타내는 주인공의 글을 실제로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러려면 웹소설을 쓰고 있는 현실 작가의 실력이 노벨상 수상자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소리니까.
간혹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애걔, 겨우 이 정도가 불후의 명작?’이라는 반응이 나올 뿐이다. 독자들에게 인기 많던 소설 속 초절정미소녀 캐릭터가 정작 일러스트 삽화가 나오면 실망스러운 것과 비슷하달까.
그래서 대다수의 현대판타지 작가물 역시 다른 소설과 비슷하게 ‘대중들은 환호하고, 주인공은 돈과 명예를 쥐고, 악당은 제끼고, 플렉스하는 모습으로 대리만족 시켜주는’ 흔한 흐름을 따라가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 ‘시간을 달리는 소설가’를 읽기 전까지는.
주인공의 이름은 문인섭.
이제 겨우 소설가로 빛 좀 보나 싶더니 스물 두 살의 나이로 임파선암에 걸려 사망.
그리고 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 고아원의 파릇파릇한 열 두살 문인섭으로 다시 깨어난다.
죽기 전까지 갈고 닦았던 12년 어치의 글솜씨를 바탕으로 천재 작가, 신동 소리를 들으며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다.
초반 전개만 놓고 보자면 흔하디 흔한 작가 회귀물이다.
그 과정에서 보육원 출신이 겪을 수밖에 없는 어둡고 음울한 현실을 독자의 면상에 쑤셔박고, 현재 순문학계와 출판업계의 적나라한 뒷사정을 까발리고, 열 두살 짜리가 내뱉는 22년 묵은 독설이 가져오는 파격의 즐거움을 보여주고, 각종 이권과 정치 싸움이 난무하는 가운데 제낄 놈 제끼고 함정은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그 일련의 흐름을 묘사하는 필력이 일품이다.
“문학상을 돈 주고 사자고 말씀하셨죠? 제가 돈이 없어서 함부로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제가 쓴 나머지 소설들도 문학상을 사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고를 칠거면 제대로 쳐보자는 거죠. 문학상 한 개를 사면 편법이지만, 열 여섯개를 사면 예술입니다.”
임양욱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 이거다. 문학상 한 개를 사는 건 노이즈마케팅이지만, 열 여섯개를 사는 건 행위예술이었다. (중략)
임양욱은 전 재산을 들이부어 도합 5만권이나 뽑아낸 책들에 이런 문구를 붙였다.
16개 문학상 동시 수상작가, 문인.
이것이 그들의 전심전력이다. 임양욱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쏟아부었고, 소년은 자신의 모든 글들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그들은 세상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이제 세상이 대답할 차례였다.
혼란스럽다. 내가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찍는 카메라도 낯설었고, 지나치게 예쁘고 텐션이 높은 진행자도 부담스러웠다.
머리가 백짓장처럼 하얗게 물든 것 같다 (중략)
“평소 보육원 생활은 어떤가요?”
“보육원 생활이요? 썩 자유롭진 않아요. 물건같은 거 자주 빼앗아가고 그러죠. 특히 고등학생들 불시검사 보면 콘돔이란 콘돔은 쥐잡듯이 뺏어가면서 막상 임신해서 미혼모되면 갈보취급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해요. 근데 어른들이 그렇다니까 그러려니 해야죠, 뭐.”
그 순간, 세상이 얼어붙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가볍고 흥미진진하게 읽을만한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는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만큼 엄청난 걸작은 아니다. 전개가 치밀하고 읽는 재미가 있는 필력 좋은 소설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몇 편 씩은 발견되니까.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진심으로 감탄하게 만드는 부분은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혹은 철학적 질문, 화두, 주제의식 그 무엇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가 분명하고, 그 분명한 메시지를 어느 새 나도 모르게 흠뻑 빠져들어 생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어린 천재에게 열광해. 자기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우리나라에 이런 천재가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은거야. 그 사람들은 네 책을 모르더라도 널 좋아할거다. 당연히 네 책을 아는 사람은 너를 더 좋아할거고. 간단하다니까? 웹소설 식으로 표현하자면 ‘어린애가 글을 잘 씀.’ 뭐 이런 거지.”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이 이것이었다.
이건… 너무 쉬웠다.
고작 시간을 돌아온 것만으로도, 간신히 메이저 문학상을 통과했던 유망주가 불세출의 천재가 되어버렸다.
작가로서의 성공이 고작 어린이 문학상 수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라면,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의 나는 대체 뭐가 되는 것인가? (중략)
태어난 순간 운명, 혹은 수저라고도 불리는 사슬에 묶여, 인생이라는 거대한 강물에 던져진다.
그리고 평생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지쳐서 힘이 빠졌을 때 꼬르륵 가라앉아 죽어버린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대체 뭔가?
없었다.
내 유일한 발버둥인 꿈마저도 임파선암으로 허무하게 앗아가 버린 게 이 저주스러운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건 누군가의 악의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는, 이 비참한 삶을 조금 더 일찍 마무리하는 것.
그것이 나의 사인(死因)이다.
“빨갱이 사냥은 미움이 담긴 글입니다. 절 버린 부모님을 향한 욕설이나 다름없는 책이었지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야 마땅할진대, 이를 어긴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어둡고 끔찍해졌다. 그런 생각으로 쓴 소설이 맞습니다. (중략)
…하지만 사랑은 어려운 일이더군요. 부모님이 절 버린 것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그만큼 상처를 줬습니다.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해야 할까요? (중략)
저는 이제 절 버린 부모님이 영원히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언제가 다시 각자의 사랑을 찾아 재혼하고, 새롭게 아이들을 가지고, 부디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그리고 만약 다시 실수하고 실패한다고 해도, 마음 속의 사랑을 잃지 않고 계속 사랑하며 나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 부모님과, 이 책을 읽은 독자 모두가 말입니다.”
문인이 언뜻 착잡한 듯, 후련해 보이는 표정으로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이 쓴 책을 구구절절 묘사하지 않는다. 대략적인 줄거리, 그리고 필요에 따라 몇몇 부분이 발췌되어 나올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인섭이 쓴 책, ‘사인(死因)’과 ‘빨갱이 사냥’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이 책들이 불티나게 팔렸다는 소설 속 묘사 때문이 아니라, 작가가 평소에 갖고 있었던 고뇌와 주제의식- 흙수저 물고 태어난 대다수의 사람들이 거대한 운명의 압력에 어떻게 저항해 나가는가? 또는 이 시대의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가꾸어 나가야 하는가?-이 절절하게 녹아나오기 때문이다. 그것도 실체는 없이 제목과 내용 몇 줄 맛보기로 보여준 가상의 소설들을 통해서.
이는 하루아침에 나올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마치 진주조개가 핵을 감싸고 끊임없이 키워내서 누구나 감탄하는 진주를 만들어내듯, 작가 역시 질문을 품에 안고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끊임없이 갈고 닦은 결과물이다. 아니면 소설 속 문인만큼 천재거나.
그렇기 때문에 시.달.소.는 흥미진진하다. 진짜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싶은 소설들이 계속 등장한다. 그리고 그 소설을 둘러싼, 한편으로는 매우 현실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허구스러운 사건들이 매력을 더한다. 어찌보면 유튜브에서 종종 보이는, 끝내주는 명작 영화를 15분만에 요약해서 보여주는 채널(과 그 밑으로 주루룩 달린 댓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영화 리뷰 채널의 특징이라면, 일단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끝날때까지 정신없이 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 소설 또한 그렇다.
총평: ★★★★★ 현대판타지 작가물 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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