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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사피엔스21(2008)
질문이 많으시군요. 주인이 입을 열었다. 어디에서 오는지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치고는 말입니다.
동전던지기에서 제일 크게 잃은 게 뭐요?
네?
동전 던지기에서 가장 크게 잃어 본 게 뭐냐고 물었소.
동전 던지기요?
동전 던지기.
모르겠는데요. 사람들은 대체로 동전 던지기에 뭘 걸거나 하지 않잖아요. 보통은 뭘 결정할 때 동전을 던집니다만.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결정한 가장 큰 일이 뭐요?
모르겠어요.
시거는 25센트짜리 동전을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손톱으로 튕겨서 위쪽의 푸르스름한 형광 불빛 속으로 빙글 던져 올렸다. 그러고는 동전을 낚아채서 팔에 말아놓은 피 묻은 수건 바로 위쪽의 팔등헤 찰싹 내려놓았다. 그가 말했다. 맞히시오.
- p.66
영화 사상 최흉의 사이코 살인마, 안톤 시거가 등장하는 스릴러 소설.
줄거리 자체는 흔하디 흔한 마약 카르텔의 총싸움, 그리고 운좋게 갱단의 돈가방을 가로챈 사람과 그 뒤를 쫓는 악당들 이야기.
그런데 역대급 사이코 안톤 시거가 끼어들면서 엄청난 스릴러가 되어버렸다.
나를 봐. 시거가 말했다.
남자가 시거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영어 할 줄 알아?
그래.
눈을 돌리지 마. 당신이 나를 봤으면 좋겠어.
그는 시거를 보았다. 남자는 새로 밝은 날이 희미하게 옅어지는 것을 보았다. 시거는 이마에 총구를 대고 머리를 관통시키고는 남자를 지켜보았다. 두 눈의 실핏줄이 터지고 빛이 희미하게 사위어 갔고 그렇게 진이 빠진 세상에 타락해 가는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 p.136
동전 던지기로 삶과 죽음을 정한다는 점,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기준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점에서는 '배트맨'의 조커와 투페이스를 섞어놓은 듯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인간의 탈을 쓴 재앙 그 자체.
책에 일단 빠져들면 숨가쁘게 휙휙 지나가는 전개에 어느 새 마지막 장을 넘기며 "이렇게 끝난다고? 이게 뭐야 X발!"을 외치게 되지만, 코맥 매카시 특유의 건조한 문체와 구두점 생략은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면 약간의 장벽으로 다가올수도 있다.
그런 경우라도 실망하지 말고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를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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