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쟁자수로 일해왔던 주인공이 의문의 도적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과거로 거슬러 와서 자신이 일하던 표국의 표국주 넷째 아들, 이정룡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잘 하는 것도 별로 없이 맨날 기루로 놀러다니던 한량이라 집안에서도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던 이정룡.
하지만 쟁자수로 쌓아 온 표행 지식과 미래의 굵직한 사건을 안다는 이점을 살려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데...
이렇게만 놓고 보면 그저 흔하디 흔한 환생, 신분 세탁, 미래 예지의 콤보를 통해 승승장구하는 주인공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그런 소설로 보이기 쉽다.
물론 주인공이 잘 나가는 것을 보며 통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맞는데, 여타 소설과의 차이점이라면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이 굉장히 설득력 있으면서도 재미있다는 것.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안다고 하면, 보통은 '여기서 만년설삼이 발견되었었지', '저기서 전대 고수의 비급이 발견되었었지'하면서 무공을 급속도로 뻥튀기 시키며 장애물을 단번에 쓸어버리는 반면
환생표사는 일개 쟁자수가 전생에서 고급 정보를 입수하기 힘들었을거라는 현실적 제약을 걸어버리고, 대략적인 소문과 쟁자수 본연의 경험에 특유의 말빨과 기지를 섞어 고난을 헤쳐나가는 방식이라 몰입감이 뛰어나다.
예를 들어 표행 중에 산적들이 길을 막길래 통행세를 주었는데, 때마침 폭우로 인해 강이 범람하며 수적들까지 몰려와서 통행세를 요구하는 상황. 쉽게 가자면 막돼먹은 도적들을 등장시켜 죽일놈 만들고, 숨겨놨던 무공 실력을 발휘해서 싹 쓸어버리면 그만이다. 좀 더 풍부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소설이라면 양측을 이간질시켜 양패구상을 만드는 정도.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본연의 무공보다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말빨과 협잡으로 산적과 수적들 양쪽을 만족시키며 돈까지 받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볼 만 하다. 수적과 산적들의 밥그릇 싸움, 그 알력 사이에 끼어들며 통행세를 빌미로 이쪽 편을 들었다가, 저쪽 편을 들었다가 하면서 결국엔 원래는 물이 불어 건너지 못했을 강도 당일치기로 건너 버리고 돈은 통행세에 마차 수리비까지 얹어서 더 챙기고, 그러면서도 녹림맹과 장강수로채 양쪽 모두에게 미움받지 않게 해결 해 버린다.
소설의 전개가 대부분 이런 식. 알 건 다 알고, 기연도 얻을만치 얻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난관을 깔아둔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를 굉장히 재미있게 묘사하기 때문에 읽을 맛이 나는 글이 되는 듯.
또 한 가지 뛰어난 점은 각각의 등장인물이 뚜렷한 매력을 갖는다는 사실. 주인공도 그렇고, 여주인공도 그렇고, 그들에게 빌붙어 다니는 조연 캐릭터들도 그렇고 나름 이미지가 뚜렷하게 그려지며 이야기 몰입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성 역시 큰 틀에서 보자면 여타 무협 소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줄거리가 진행되면서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행동이나 대사를 세심하게 신경쓰며 살아움직이는 인물상을 묘사하고 있다.
그 덕에 연애 라인도 동자공 익힌 눈치 없는 고자와 황제 부럽지 않은 하렘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나름 순애라고 할 수 있을만큼 알콩달콩한 썸이 시작...되려는 중.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온라인 연재 포맷에 맞추다보니 각각의 에피소드가 갖는 호흡이 상대적으로 짧을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깊이있는 내용을 녹여내는 건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한마디로 재미있게 볼 수는 있어도 심각해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거. 억지로 심각한 내용 붙여버리면 오히려 소설의 정체성이 이상해질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걸 굳이 단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게, 워낙 필력이 괜찮아서 매 화를 재미있게 읽으며 다음 화를 기다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데다가, 짧은 호흡은 또 짧은 대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맛이 있어서 오히려 이런 점을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볼만한 사람도 많을 듯 하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반지의 제왕과 왕좌의 게임(전반부)를 비교하는 느낌이랄까.
종종 좌백의 독행표나 금전표가 떠오를 정도로 작가가 무협 소설의 표사라는 직업군에 대해 갖는 애착이 보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어지간하면 크게 실망 할 일 없이 읽을만한 좋은 소설인 듯.
<2020년 4월 3일 완결>
오래간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으면서 깔끔하게 완결 난 소설을 접한 듯 하다.
물론 무협계 불후의 명작이라고 할 수는 없는게, 아무래도 일일연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탓인지 각 화마다 호흡이 짧고 깊이있는 전개를 펼치지 못했다는 단점은 있다.
표사가 주인공인 무협 소설이라면 좌백의 독행표나 금전표가 먼저 떠오르지 환생표사가 먼저 떠오를 것 같지는 않다는 소리.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읽는 소설은 또 그 캐주얼한 느낌이 갖는 고유의 가치가 있고, 머리 아플 때 한 숨 쉬어가며 읽기에는 오히려 이런 소설들이 더 나은 것 아닐까 싶다.
총평: ★★★★☆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캐주얼한 무협 소설. 오래간만에 만족스러운 표사 무협을 볼 수 있어서 좋았음. 가볍게 읽히는 소설이 취향이라면 별 다섯개도 가능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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