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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Nonfiction_비소설

빵은 인생과 같다고들 하지

by nitro 202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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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인생과 같다고들 하지 / 윌리엄 알렉산더 지음, 김지혜 옮김. 바다출판사 (2019)

“딱딱하고 누런 빵을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갈색으로 노릇노릇 익은 껍질은 한입 베어 물자 만족스럽게 부서졌다. 정말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게다가 물리학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바삭바삭한 동시에 쫄깃했다. 처음에는 치아, 그 다음 혀의 순서로 천천히 음미해야 할 빵 껍질이었고, 지금까지 맛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천연의 단맛과 이스트 향이 났다. 

  빵 속도 껍질 못지않게 맛있었다. 정제된 흰 밀가루와 통밀의 중간쯤 되는 것 같았고 투박한 느낌이 났다. 거친 질감이었지만 공기구멍이 많아 폭신한 느낌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았고, 풍부한 감칠맛이 있으면서 씹을 때 적당한 묵직함이 느껴졌다. 흰 밀가루 빵처럼 입안에 들러붙지도 않았고, 껍질에서 느껴졌던 약간의 단맛과 이스트 향도 났다. 빵이 내쉬는 (정말로 빵이 숨을 쉬었다) 그윽한 향이 식탁에 퍼졌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빵이 이렇게까지 맛있을 수도 있다는 마법 같은 깨달음과 엄청난 충격이었다. 주문한 에그 베네딕트를 종업원이 가져왔을 때 나는 그에게 빵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페전트 브레드Peasant bread(농부의 빵)라고 합니다.”

페전트 브레드라니! 이건 왕이 먹을 법한 빵이었다.

 “이 빵 만드는 법을 꼭 배워야겠어.(중략) 일 년이면 배우고도 남을 거야. 52주면 빵이 52개잖아. 일 년 안에 완벽한 빵 하나를 굽게 될 거야. 더 할 말 없어. 얘기 끝났어.”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한 중년 남자가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그야말로 환상적인 빵을 먹은 후, 그 맛을 재현해내기 위해 겪는 일 년간의 모험 이야기.

마스터 제빵사가 된다는 말이 아니다. 빵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빵, 페전트 브레드 하나를 굽기 위해 걸린 시간이 일 년이다.

직접 밀농사를 짓고, 밀가루를 만들고, 화덕을 만들고, 여러 레시피를 시험하고, 빵 공장에 견학가고, 대회에도 출품하고, 리츠 요리학교의 제빵 수업을 듣다가 마지막에는 프랑스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의 제빵 스승이 되어 잊혀진 빵을 되살려낸다.

이 모든 것이 일 년만에 이루어졌으니, 어찌 보면 그닥 긴 시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빵이라고 하면 대부분 비닐봉지에 담긴 네모난 샌드위치 식빵을 떠올리는 우리나라에서는, 서양 (특히 유럽) 사람들은 버터나 달걀이나 설탕이 들어간 빵은 빵Bread이 아니라 페이스트리Pastry로 간주해서 빵집Bakery에서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질수도 있다.

오직 밀가루, 물, 이스트, 그리고 약간의 소금만으로 만들어야 빵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재료가 간단할수록 진짜 맛있게 만들기는 더욱 어렵다.

저자가 52개의 빵을 굽는 동안 배우고 겪은 일들, 그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그가 굽는 빵에 스며들며 조금씩 더 맛있는 빵을 만들어 낸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티라미수를 재현하기 위해 남대문 도깨비 시장을 뒤지고 다녔던 경험이 있는지라 꽤 동질감이 느껴지는 여정이다.

그야말로 인생과도 같은 빵 제작기 자체도 재미있지만, 빵알못 초보자도 52번만 시도하면 프랑스 수도원의 제빵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큰 교훈을 준다.

한 가지 요리를 마스터하는데 52번만 시도하면 된다니, 해 볼만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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