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속담 중에 “장님 나라에서는 애꾸눈이 왕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작은 재주를 지닌 사람이라도 그런 능력이 아예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초인과 같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연 진짜로 그럴까?
“우주전쟁”의 작가로 유명한 H.G.웰즈는 “눈먼 자들의 나라”라는 단편소설에서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누네스는 우연히 장님들만 사는 나라에 도착하고 자신의 능력을 뽐낼 생각에 우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시각 없이 사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 누네스가 ‘본다’라는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혀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여긴다. 결국 눈알을 계속 움직이는 것이 병을 일으킨다며 눈을 뽑으려는 바람에 도망쳐 나오는 것이 그 내용.
언뜻 보면 한 편의 코미디 같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을 우러러 받들기보다 어떻게든 고꾸라뜨리려고 헐뜯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꼭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리고 이 소설, “양과 늑대의 요람”을 관통하는 주제의식도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신체적으로 월등히 우월한 신인류가 등장한다면, 기존의 사람들은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소설에서의 답은 “지하에 다 몰아넣고 자기들끼리 죽이던 말던 알아서 살도록 한다”가 된다.
올림픽 선수도 상대가 되지 않는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가진 이들이기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그렇다고 보이는 족족 죽여버리기에는 인권이나 도덕을 비롯한 사회 문제가 발생할수도 있을 뿐 아니라 귀중한 연구 샘플들이 사라지는 셈이니 일반인들 모르게 몰래 납치해다가 지하 도시에 버려놓는다.
“여기는 전과자를 위한 구치소가 아닙니다. 그런 곳이라면 교도소라는 좋은 시설이 있지요. 여기는 다른 걸로 선별합니다.”
“그렇다면 뭘로 구분 짓는다는 말이오?”
“인류학자인 교수님에게 참 이런 설명해 드리기 웃기지만 유전자로 구분짓습니다. 이것은 20세기 중반, 2차 대전 이후부터 각국의 수뇌부와의 공조를 통해 범국가적으로 비밀리에 시행되는 일입니다.”
중국의 항우, 사자심왕 리처드 1세, 조선의 척준경같은 양반들이 모두 이러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다는 설명. 이는 단지 육체적으로 뛰어날 뿐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살인 기술과 과격한 호전성으로 인해 옛날이라면 모를까 현대 사회에서 풀어놓고 살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주인공 정용화 교수는 이른바 ‘늑대’들이 살고 있는 지하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공격적이고 싸움에 소질있는 신인류들을 처박아놓은 세상인만큼 좋은 주먹 놔두고 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드문 동네.
“이 녀석 양복은 내 꺼다. 최씨는 신경쓰지 마.”
“무슨 소리 하는겨? 나가 먼저 찜했구만.”
(중략)
허리를 잡고 있던 최씨의 팔이 풀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흉터 중년은 봐주지 않았다. 그의 눈은 더 짐승같이 빛났고 주먹질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기본적인 식량 정도는 상부에서 주어지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싸워 이기고 죽여가며 손에 넣어야 하는 도시. 그곳에서 교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기도 하며 그 야만적인 세상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늑대들 중에서도 강한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이름 - ‘붉은 호랑이’나 ‘입이 큰 뱀’, ‘시체 먹는 쥐’와 같은 칭호들은 일견 손가락이 오글거리지만 그만큼 캐릭터를 머리 속에 형상화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다. 교수는 그런 ‘동물 이름’들과 어울리며 점점 정체를 드러내는 적들을 이겨내고 “늑대와 양의 공존”에 대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점점 세력을 넓혀간다.
중반 이후 2부로 넘어가면서 시점이 바뀌는 과정에서 호불호가 좀 갈릴 수도 있을 듯 하다. 이전의 1부에서도 등장인물들이 마치 연극을 하는 것처럼 캐릭터성을 과하게 부각시키는 면이 있었는데 2부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는 그런 느낌이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먹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다보면 그렇게 ‘겉멋’에 목숨거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겉멋에 목숨 거는 사나이들이 주먹으로 (혹은 칼이나 해머 등으로) 대화하며 싸워나가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굳이 머리 복잡하게 계급 투쟁이니 진화니 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슬슬 넘기다 보면 세력을 일구고 적들의 뒷통수를 때려가며 어느 새 마지막 권에 다다른다.
독특한 캐릭터, 혹은 독특한 무기를 사용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건 왠지 일본 소년만화 느낌이 나는데 피 튀겨가며 죽고 죽이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이라 왠지 언밸런스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갭에서 느껴지는 매력이 독특한 소설. 몇 년 전에 완결된 작품이라 요즘 웹소설 특유의 가벼움은 없지만, 그런 만큼 경박한 느낌에 질린 사람이 천천히 읽고 싶은 글을 찾는다면 추천할만하다.
총평: ★★★☆☆ 좀 심하게 마초스러운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잘 어울리는 소설.
판무림에서 후원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s://www.fanmurim.com/book/73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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