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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무협&판타지

판타지 소설 리뷰: 평화로운 먼치킨 영지

by nitro 2022.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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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다는 건 보통 단점이지만, 간혹 그 특유의 유치한 맛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장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똥’이나 ‘방귀’라는 단어만 들어도 배꼽 잡고 웃는 것은 한편으로는 유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웃음 코드를 잘 잡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가 내 머리 위에 똥쌌어?”라는 동화가 그렇게 인기를 끌었을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줄거리라도 머리 위에 똥 싼 범인을 찾는 것이 평범한 물건을 훔친 동물을 찾는 것보다 재미있다.

웹소설계에서도 간혹 이와 비슷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평화로운 먼치킨 영지. 딱 제목만 봐도 ‘먼치킨’ 주인공이 적들을 썰어버리며 자신의 영지를 키워나가는 내용이다.

소설 시작하자마자 마왕 제라피스를 단번에 잡아 죽이는 대마법사 아인 하스터. 마왕의 심장을 재료로 써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살아있던 과거로 회귀한다.
비록 대마법사로서의 능력은 초기화되었지만, 미래 지식을 훤히 꿰고 있는데다가 이미 한 번 도달했던 경지를 다시 밟는 셈이라 엄청난 속도로 강해진다.
그 과정에서 마을을 침략하려던 오크를 잡아 노예로 부려먹고, 오크들이 경작하는 농장에 트롤의 피를 뿌려 식재료를 생산하고, 그 식재료로 요리를 해서 먹는 사람이 강해지는 음식을 만들어 팔며 마을 사람들도 성장시킨다.
각종 마물, 마족, 악의 단체가 이 마을을 침범했다가 여지없이 단번에 죽어나가거나 농장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 주된 줄거리.

너무나 흔한 전개인지라 비슷한 내용의 소설만으로도 6단 서가를 족히 채우고도 남는다.
문체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참신한 설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헛웃음과 배꼽잡는 웃음 사이를 오가게 만드는 유치한 개그가 만발하기 때문이다.  

* * *

잭의 명령이 떨어지자 흑마법사들이 머릿속으로 마법 시전을 위한 공식을 그려 나갔다.
바로 그때.
"6곱하기 21은?"
아인이 물었다.
순간 흑마법사들이 그리던 마법 공식이 전부 꼬여버렸다. 저도 모르게 6×21의 답을 구하고 말았던 것.
"이런 치사하고 더러운 놈 같으니라고."

* * *

자세히 보니 그건 허수아비가 아닌 사람이었다.
사람을 십자가 형태로 만든 나무 기둥에 매달아놓은 것.
"저것들 뭐냐."
아인이 묻는 순간 참새 한 마리가 밭으로 날아들었다.
순간 나무에 묶여있던 보리스가 버럭 고함을 쳤다.
"저리 꺼져, 이 참새 새끼야! 처먹지 마! 처먹지 말라고!"
째액!
보리스의 고함에 놀란 참새가 밭을 떠났다.
"좋네. 허수아비도 생기고."
아인은 포근한 시선으로 점점 완벽해져가는 마을의 정경을 감상했다.

* * *

"너희들끼리 있을 때만이라도 다크문 시절의 호칭을 사용하도록 허락해주마. 베이션, 앞으로 내가 부재시에는 네가 마스터다."
"오오! 축하드립니다, 선배!"
"이야, 멋집니다 마스터 베…"
"그 이상 말하지 마!"
베이션이 다급히 대원들의 입을 막았다.

* * *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막장 전개가 이어지는 소설도 많은 웹소설판.
오크를 부하 삼고 다크엘프의 머리를 빡빡 미는 정도는 새롭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엽기적인 전개에 피식 웃게 만드는 유치함이 섞이니 문구점에서 파는 불량식품 마냥 계속 한 회씩 뽑아먹게 된다.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릴 법한 내용이고, 유치한 맛에 읽다가도 캐릭터 이름으로 장난치는 게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전반적으로 가볍게 피식거리며 읽기 좋은 소설.
이렇게 장난치듯 읽는 소설은 너무 길면 지루해지는 법인데, 다행히 ‘이제 슬슬 하차각인데’ 싶은 7권에서 완결된다.
다만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듯 기승전결 잘 짜여진 완결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 * *

“아인, 나 지구로 돌아가면 여기서 지냈던 일들을 글로 써 볼 생각이다. 사실 내가 겪었던 일들을 그대로 옮기면 B급 감성 충만한 괴랄한 변태 판타지 소설 취급이나 받겠지만, 어쩌겠어? 소설의 제목을 생각해봤는데, ‘평화로운 먼치킨 영지’ 어때?”
아인이 가츠에게서 들었던 소설의 제목을 곱씹다가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평화로운 먼치킨 영지라. 작가로 먹고 살 생각이면 다른 이야기를 쓰는 편이 나을지도.”
(중략)
강철(가츠)은 거대 플랫폼에 연재를 시작했다. 한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망작도 이런 망작이 없었다. 마치 기대주를 사놨다가 휴지 조각이 되어버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결국 강철은 50권 가량으로 잡아놓았던 글을 대폭 줄여 7권으로 마무리 짓고 말았다. 

* * *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소설이랄까.
B급 감성을 좀 더 제대로 살리고, 단편적인 코믹 요소가 아니라 글의 구조적으로 사람 웃게 만드는 내용이 더 들어갔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피식거리며 읽을 수 있는 괴랄한 변태 판타지 소설이 탄생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총평: ★★☆☆ 가벼운 저질개그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별 하나를 줄 수도 있지만, 코드가 맞으면 의외로 괜찮은 킬링타임 소설이 될 듯. 

판무림에서 후원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2bqKs4km0bhGihFZ_d-HDtaTSwGdV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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