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부엌 -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서 / 류지현 지음, 낮은산 (2017)
나름 요리학교도 졸업하고 업계에서 짧게나마 일해 본 얼치기 요리사의 입장에서는
전통적인 것에 무조건 가산점이 붙는 것이 약간 불합리하게 보이기도 한다.
한식이라고 하면 무조건 한복 입은 할머니들이 전통적으로 빚은 항아리에서 전통적으로 담근 장을 퍼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요리하는 장면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못마땅하달까.
물론 그런 방식이 갖는 나름대로의 장점을 모두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지나치게 신성시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책은 실용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공감가는 글은 아니다.
아이캔이 우주선 타고 아빠찾아 외계로 떠나는 2020년도 지난 마당에 “냉장고 없이 살자”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리기란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인문학, 사회학적 시각에서 봤을 때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지상의 눈을 그대로 지하실에 연결된 통로로 쓸어넣어서 만드는 이탈리아의 눈 저장고, 테라코타 단지에 자연적으로 어는 얼음을 활용하는 인도, 그리고 세계 각국의 절임 음식과 발효 음식들.
이 책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 사람들이 어떻게 배고픔과 식중독을 극복했는지에 대한 서술인 동시에 그 과정에서 태어났던 새로운 맛과 음식들을 소개한다.
테레지나가 작고 낮은 철장문을 연다. 와인 됫병 몇이 구석에 보이고 과일 상자들 틈에 있는 병조림도 눈에 띈다.
창이 없고 바닥이 조금 낮은 것이 아까 본 창고 방과 다를 게 별로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이 건물이 냉장고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아리송해하고 있는데 테레지나가 손짓을 한다.
테레지나가 가리키는 곳에 작은 도랑이 있다. 건물 옆에 흐르는 이 물 덕에 이곳을 냉장고처럼 이용할 수 있었단다.”
물론 냉장고를 “손도 안 대고 버릴 음식을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전기를 가동하여 보관하는 셈이다”라고 평가하는 저자의 시각이 꽤나 정치적으로- 환경보호운동도 정치의 영역이다 - 편향되었다는 사실은 감안해야 한다.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은 아닌 듯, “토마토를 왜 냉장고에 넣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최신 주방용품의 화려한 기술력에 현혹되기 쉬운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적절히 조화롭게 섞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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