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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Fiction_소설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

by nitro 2025.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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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 / 조앤 플루크 지음, 박영인 옮김. 해문 (2006)
레이크 에덴의 미식축구 영웅, 론 라살르가 좌석에 얼굴을 묻은 채 쓰러져 있었다. 론의 하얀색 모자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주문이 적힌 클립보드가 바람에 덜컥대며 흔들리고 있었다. 한나의 카페에서 산 쿠키 상자가 열린 채로 좌석에 놓여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온통 초콜릿칩 쿠키 부스러기들이 널려 있었다.
론의 한 손에는 여전히 쿠키가 들려 있었다.
이윽고 한나의 시선이 그곳에 닿았다. 론의 코지 카우 데일리 배달 유니폼 셔츠에 뚫려 있는 끔찍한 구멍.
론 라살르는 총에 맞아 살해당한 것이다 - p.25
 
"박사 학위를 얼마 남겨 두지 않던 시기였잖아. 제대로 마쳤다면 지금쯤 어느 좋은 대학의 교수가 되었을 텐데."
"그럴지도."
한나는 안드레아가 말하는 바를 알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쿠키를 굽는 일이 강단에서 영미시를 가르치거나 답답한 회의실에서 사람들과 회의를 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어. 내가 쿠키단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도 잘 알잖아." - p.33
 
'따사로운 꿈들'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손 글씨로 제일 위에 적혀져 있었다. 아마 쿠키 꿈을 꿨었나 보다. 아, 그래. 한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꿈이 생각났다. 백악관 만찬에 출장베이커리 서비스를 나가는 꿈이었다. 어린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었는데, 한나의 쿠키 맛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략) 아마도 무의식중에 뭔가 기발한 레시피를 생각해 낸 모양이었다. 되는 대로 갈겨쓴 글씨들이었다.
분명 불도 켜지 않고 쓴 것일 테지. '버터'라는 글자 밑으로 '설탕'이 적혀 있었고 두 단어 사이에는 역시 휘갈겨 쓴 글씨로 '복상아'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복상아'가 아니라 '복숭아'겠지. 복숭아 쿠키.......
흥미있는 쿠키 재료였다. 또 노트에는 마쉬멜로우를 '마쉬멜'이라고 적어놓은 것과 코코아가 아니면 코코넛임이 분명한, '코코'라는 단어도 적혀 있었다. 아마 다양한 재료들을 다 적어놓고 어떤 메뉴가 나올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겠다. - p.194
 
시골 마을에서 쿠키 가게를 운영하는 한나 스웬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추리소설 시리즈, 그 첫 번째.
살해당한 마을 청년의 차 안에서 자신이 판 초콜릿 칩 쿠키가 나오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범인을 찾아 나서는 과자 가게 주인의 모험 활극.
하지만 본격적인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일명 '코지 미스테리'라고 불리는, 소프트보일드 범죄물에 가깝다.
한나 역시 날카로운 통찰력이나 탐정 특유의 번뜩이는 재치보다는 과자 가게 사장님의 친화력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아마추어스럽게 정보를 모아간다.
오히려 주인공의 빛나는 관찰력과 뛰어난 재능은 살인 사건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쿠키 맛을 볼 때 진가를 발휘한다.
커다란 은쟁반 위에는 설탕 쿠키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전문가 특유의 관심과 호기심이 샘솟기 시작한 한나는 쿠키를 하나 집어 맛을 보았다. 쿠키는 그녀의 입 안에서 바스락거렸다. 하지만 어쩐지 건조한 맛이었다. 그녀의 혀끝에 먼저 와 닿아야 할 버터의 감미가 부족했다. 바닐라 향도 전혀 나지 않았다. 한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 쿠키들은 겉보기만 멋있을 뿐, 아무런 맛도 향도 없었다. (중략)
"쿠키가 정말 실망스럽네요, 설마 직접 구우신 건 아니겠죠?"
"솔직히 말인가요?" 연회 담당자는 어쩐지 즐거워 보였다. "외주 공급자로부터 들여온 거예요."
한나는 안도했다. 적어도 연회 담당자의 베이킹 실력을 흠잡을 필요는 없게 되었으니.
"이제부턴 그곳에서 구입하지 마세요. 버터대신 싸구려 쇼트닝을 썼어요. 바닐라도 너무 적게 들어갔구요. 또 오븐에 너무 오래 구웠어요. 쿠키 색이 갈색으로 변하는 걸 막기 위해 오븐의 온도를 낮게 맞추고 대신 오래 구운 것 같아요."
"쇼트닝을 썼는지는 어떻게 아시죠?"
"버터 맛이 안 나요." 한나가 설명했다.
"버터 없는 쿠키는 휘발유 없는 차나 마찬가지예요. 보기에는 그럴듯 하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죠."
"꼭 맞는 비유네요. 그럼 오래 구웠다는 건 어떻게 아시죠?"
"쉬워요. 마치 톱밥을 씹는 것처럼 푸석푸석하잖아요." - p.214
 
이렇듯 음식과 관련된 묘사가 나올 때마다 작가가 엄청나게 공을 들였고, 게다가 매 챕터가 끝날 때마다 적혀있는 쿠키의 레시피는 이 소설이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기자기한 연애소설이나 말랑한 활극에 가까운 분위기를 내는 데 일조한다.
다 읽고 나면 왠지 추리소설이라기보다 쿠키 광고물을 본 듯한 기분.
 
한나는 트럭에 시동을 걸고 손을 뻗어 뒷좌석에 항상 갖고 다니는 쿠키 봉지를 집어서 안드레아에게 던져주었다.
"쿠키를 좀 먹어. 지금이야말로 너한테 초콜릿의 기운이 필요한 것 같다. 기분이 좀 나아질 거야."
"초콜릿 같은 건 필요없어. 지금 기분 같아선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다구! 어째서 내가 언니의 이런 무모하고도 바보 같은 생각에 동조했는지 당장이라도 심리학자에게 가서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야, 어떻게 이런... 이런..."
자신이 흥분한 상태라는 걸 깨달았는지 안드레아는 이내 말을 멈추고는 봉지를 열고 쿠키를 꺼내 깨물었다. 쿠키를 씹어 삼키고 나더니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쿠키 정말 맛있다, 언니."
"초콜릿을 입힌 체리 쿠키야. 엄마가 화나셨을 때마다 아빠가 초콜릿을 씌운 체리를 만드셨다는 얘기를 듣고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지."
(중략) 안드레아는 뒷좌석에서 손전등을 집어들었다.
"언니, 이번 일로 나한테 쿠키 한 상자 정도는 빚진 거 알고 있지? 초콜릿을 입힌 체리 쿠키로 받겠어." -p.273
 
하지만 머리 아프고 끔찍한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추리 소설도 좋지만,
이렇게 과자 봉지 하나 옆에 끼고 오지선다 객관식 문제를 네 번 틀려가며 정답을 맞추는, 약간은 어설픈 과자가게 주인의 좌충우돌 모험기 역시 다른 의미에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단, 이 책을 읽기 전에 쿠키와 커피는 반드시 준비해 둘 필요가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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