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에서의 장르란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구구절절한 설명 필요없이 독자들과 세계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또 그만큼 작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요즘 유행하는 회귀헌터물 역시 마찬가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주인공은 현대인이지만 모종의 이유로 판타지 세계와 현실 세계가 연결이 되고,
이계를 돌아다니며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가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설정.
여기에 덧붙여 통쾌하게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주인공이 과거로 회귀하면서 비정상적으로 강력해지는 경우 역시 부지기수.
그러다보니 이런 회귀헌터물에서 잘 쓴 소설이란, 이 정해진 틀에서 어떻게 매력적인 주인공을 만들어내고, 어떻게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느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계의 후예는 큰 맥락에서 봤을 때는 꽤나 흔한 세계관일지 몰라도 세세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조금씩 차이가 나면서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그래서 '왠지 뒷 이야기도 뻔히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보면 약간씩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갑자기 차원문이 생성되며 이세계 카메론과 연결.... 된 지도 어언 100년.
오크는 방패 들고 샷건 쏘고, 엘프는 가짜 꼬치구이로 사기 치는 그런 세상.
주인공 김수현은 초능력을 각성하고 대한민국 특수부대에서 군인으로 일했지만 카메론 개척 임무를 담당하던 중 심각한 부상을 당한다.
한국군 특유의 상이군인 푸대접으로 인해 재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절망적인 미래가 확정된 상황.
다행히 죽은 후에 신을 만난다거나, 과거회귀 트럭에 치인다거나, 벼락을 맞는다거나 하는 일 없이 눈 한번 감았다 뜨니 어느 새 신병훈련소로 돌아오게 된다.
다시는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열정페이를 받고 착취당하지는 않으리라 다짐한 수현은 같은 일을 하면서 돈은 훨씬 더 많이 받는 용병으로 취직을 하게 되고
특수부대 팀장으로 활동하며 얻는 경험과, 미래의 지식, 그리고 점점 강력해지는 자신의 초능력을 통해 몬스터도 때려잡고 사람도 끌어모으고 방해되는 세력은 치워버리며 성장하는 내용.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렇게 큰 맥락에서 본다면 다른 수많은 회귀헌터물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보이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보면 전통적인 판타지 소설과는 다른 카메론의 세계관, 그리고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되는 주인공이 그 힘 뿐만 아니라 음모와 계략, 협박 등을 이용해가며 효율적으로 적대 세력을 치워버리는 것이 이 소설의 중요한 감상 포인트다.
오죽하면 뒤로 갈수록 댓글에 "주인공 저 놈이 회귀 전에도 저런 성격이었다면 버림받은 게 이해가 간다"는 감상이 자주 등장할 정도.
예를 들어 정체 불명의 테러리스트 집단을 잡았는데 알고보니 중국 소수민족이 주축이 된 독립운동 집단이고 수현은 겉으로는 중국과 점잖은 협력관계이지만 실제로는 경쟁상대인 상황.
"이런 말을 아나? 적의 적은 친구라고."
"...?"
"우리는 괜찮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게 무슨...?"
"독립운동 한다고 하지 않았나? 중국에게서?"
"예? 예..."
"나는 중국을 좋아해."
"??"
"그래서 중국이 여러 개면 더 좋겠단 말이지."
"!"
(중략)
"혹시 어떻게 도와주실 생각이신지..."
"그 쪽은 (카메론이 아니라) 지구에서 싸우고 있겠지?"
"예."
"부족한 게 많을 텐데,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아티팩트입니까?"
"아티팩트가 있으면 중국군을 이길 수 있나?"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별로 똑똑한 대답은 아니군."
"...그러면 인공 아티팩트는 어떻습니까?"
"인공 아티팩트, 좋지. 대형에, 초능력자 없어도 쓸 수 있고. 그런데 그걸 가져가서 쓰려고? 쓰는 순간 당장 중국 정부쪽에서 나한테 캐물을텐데. 저걸 저 놈들이 어떻게 갖고 있냐고."
그렇다면 지금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이란 말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몬스터야."
"?"
"생각해 봐. 몬스터만큼 완벽한 방법도 없어."
이 짧은 대화에서도 드러나듯이 주인공은 자신의 안위를 철저히 따지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경쟁상대를 견제한다.
다른 흔한 소설이었다면 애초에 힘으로 중국군을 밀어붙이거나, 수뇌부의 목을 따버리는 식으로 진행되었을 줄거리가 이계의 후예에서는 나름 보는 재미가 있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다만 매력적일 수도 있었던 조연 캐릭터들이 많은데, 주인공 포스가 워낙 강력하다보니 다 묻혀서 존재감이 희미하다는 게 단점이다.
수현과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동료들이 아니라 주인공이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아이템이나 퀘스트 주는 NPC의 느낌이랄까.
최종 보스라고 생각되던 이중영 역시 그닥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퇴장한다. 역사에 남을 커다란 전투 끝에 승리를 거둔게 아니라 경제를 성장시키고 적국의 무역을 틀어막아 말려죽이며 승리한 듯한 기분이 든다.
전반적으로 가볍게 진행되는 소설 특성상,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인간으로서의 힘과 초월자(드래곤)으로서의 강력함에 대한 딜레마'와 같은 무거운 주제는 소설 끝날 때쯤에 가서 반짝 등장하고 끝나버리는 것 역시 굉장히 아쉬운 점 중의 하나.
이 때문에 많은 판타지 소설이 갖는 단점, 즉 결말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한다는 단점이 이계의 후예에서도 보인다.
하지만 재미를 중점적으로 풀어나가는 소설에서 무리하게 주제를 부각시키려다 망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한 마리 토끼라도 확실히 잡는 것이 낫고, 글을 읽는 내내 수현이 깽판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웠으니 이거면 된 거 아닌가 싶은 게 주된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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