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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무협&판타지

삼국지 풍운을 삼키다

by nitro 2017.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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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역사 기록"라고 하면 조선왕조실록을 연상하며 굉장히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있듯이 지배계층의 입맛에 따라 변형되는 경우가 더 많다.

압력에 의한 노골적인 왜곡까지는 아니더라도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 역시 사람인지라 당대의 지배적인 사상에 경도되어 일정 부분을 미화시키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 

한의 정통성을 중시하던 나관중인지라 유비와 촉나라에 엄청난 버프를 넣었고, 이게 워낙 심한 나머지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읽으면 괴리감이 들 정도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정사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 역시 촉나라에서 핍박받다가 진나라에서 출사한 인물이라 진국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조조의 위나라에 정통성을 두고 책을 썼으니 이 역시 완전히 객관적인 사료라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사료로서의 가치가 반드시 재미와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점.

수많은 위인들이 격렬하게 싸우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낸 역사적 상황을 진수와 나관중이 잘 다듬어 훌륭한 소설적 기반을 만들었고 이후 많은 작가들이 살을 덧붙여 자신만의 삼국지를 써내기도 했다.

워낙 읽은 사람들이 많다보니 삼국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관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

그리고 이 좋은 세계관을 썩힐세라 판타지 소설 작가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 세계관을 기반으로 대체역사 소설을 쓰는데

그것이 가상현실 게임이 되었건, 과거 회귀물이 되었건, 역사적으로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한 무명인을 주인공으로 하건

기존의 역사를 비틀며 삼국지의 독자들이 '이랬다면 어땠을까'라고 상상하던 것을 실제로 보여준다는 매력이 있다.

"삼국지 풍운을 삼키다"의 경우에는 삼국지 매니아였던 주인공이 삼국시대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회귀하며 일세의 영웅이 되는 과정을 풀어낸다.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미리 알고있다는 이점, 뛰어난 전략적 재능, 여기에 약점을 파악하는 초능력까지.

말단 병사에서 시작한 주인공이 지방 군벌이 되고, 유명한 위인들을 쏙쏙 빼 오며 승승장구하여 결국 한황실의 이름아래 통일을 이루고 재상이 되어 태평성대를 가져오는 것이 그 내용.

삼국지 대체역사물이 대부분 그렇듯이 주요 포인트는 기발한 줄거리가 아니라 다 아는 내용을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내느냐에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소설은 읽는 재미가 있는 전개를 보여준다.

다만 삼국지 대체소설은 독자들의 수준도 워낙 매니악한지라 소소한 부분에서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으며 호불호가 좀 갈리는 것도 사실.

특히 작가도 후기에서 인정했듯이 주인공이 초반에 무장집단의 두목으로 이리저리 설칠 때까지는 글을 자유롭게 풀어나가더라도 후반부 들어서 지방 군벌이 되고 일국의 주인으로 자리잡으면서부터는 현실성있는 전개를 펼치려니 아무래도 소설의 분위기나 정체성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삼국지 소설들이 위촉오 삼국 정립 이후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감도 못잡고 무너지는 것에 비하면 비교적 깔끔하게 완결까지 낸 작품.

삼국지 게임이나 대체역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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