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 살던 평범한 흙수저 청년, 이어진.
옷장 속에 들어갔는데 나타난 것은 나니아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시절의 또 다른 헬조선.
하지만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으니, 주머니에 넣어뒀던 천이백원이 1918년의 천이백원으로 바뀌었다는 것.
물가와 화폐가치를 감안하면 대략 6만배가 뻥튀기 되어버렸다.
이렇게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옷장을 오가며 돈과 금괴 등을 교환, 양쪽의 헬조선에서 재벌로 성장한다.
조선의 거부가 될 예정이었던 위인들을 수하로 거느리고, 이미 알고 있는 역사를 바탕으로 사업 역시 승승장구.
나중에는 조선을 벗어나 일본 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하며
독립운동을 후원하고 일제에 빅엿을 먹이며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이 주된 내용.
굉장히 잘 쓴 소설이라기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킬링타임용 소설이고, 이미 작가가 작품소개 하면서부터 '사이다'와 '주모'를 키워드로 넣었을 정도로 쉽게 쉽게 넘어가는 단편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전반적으로 치밀한 설정의 시간여행이나 개연성 풍부한 대체역사물이라고 보기에는 힘들고,
특히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 설명은 인터넷에서 긁어붙인듯한 무미건조한 사실 나열로 인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호응을 얻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삶이 헬조선에 찌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돈 있는 사람들의 갑질. 친일파 후손들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극빈층의 삶을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 부정부패가 성공의 주요 수단이 되어버린 사회.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소설 속에서나마 타파하며 국뽕 한 사발 거하게 들이켜 작가 말마따나 '주모'를 찾으며 대리 만족을 느껴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나름 취향에 맞는 소설일 듯.
일제강점기와 현재의 헬조선이 보여주는 유사점을 잡아낸 것은 참 탁월한 소재 선택인 듯 한데, 정작 그걸 풀어내는 과정에서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암울한 시절일수록 문학 작품을 통해서나마 희망을 맛보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글쓴이의 필력이 조금만 더 받쳐줬더라면 마치 김홍신의 '인간시장'처럼 훨씬 더 큰 인기를 끌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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