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에 취한다는 건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위대함에 취해 애국심이 절로 뿜어져 나오는, 마약을 흡입한 것과도 같은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조금만 삐끗하면 파시즘이나 나치즘같은 극우주의로 변질될 우려도 없잖아 있지만, 국뽕이라 함은 그런 민족우월주의 성향은 많이 옅어진 탓에 대다수의 경우는 ‘한국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우승하는 것에 열광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 해도 이것이 국가 전체를 반영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카즈히로 감독에게 국뽕 좀 타먹으려고 “일본인으로서, 일본에서의 경험이 상을 타는데 도움이 되었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그 문화에 진저리가 나서 일본을 떠나 미국인이 되었습니다”라고 노빠꾸 스트레이트를 꽂은 것처럼, 우리나라 선수나 연예인이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그런데 쟤들이 성공을 거두는데 국가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뭘 해줬나”라는 질문에는 아무래도 “이득보다 손해가 더 많지 않았겠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판타지 소설에서 과거로 회귀한 주인공이 나라를 뜯어고친 덕에 세상을 휘어잡는 평행세계의 조선 내지는 고려에 감탄하며 국뽕을 돌이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먼치킨 주인공이 홀로 적들을 썰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계몽시키고 국력을 길러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을 누르고 초강대국으로 변하는 것이기에 한국인이라면, 특히 이웃의 강대국들이 하나같이 침략 걸어오던 역사에 치를 떨던 한국인이라면 단순히 자긍심을 넘어 복수심까지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나라 사람끼리 아무리 추켜세워줘도 외국인이 치켜 세워 주는 것만 못하듯, 픽션에서도 외국 작품에서 한국을 높게 평가했을 때의 국뽕 농도는 국산 대체역사 소설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기에, 외국에서 인정받는 것을 객관적 성공의 지표로 삼기 때문일까.
그렇기에 ‘킹 세종 더 그레이트’는 왠지 ‘세종대왕’보다 더 위대하게 보인다. 초등학교 한글 교과서보다 찌아찌아족 한글 교과서를 볼 때 한글의 위대함을 더 실감하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일지도.
내용 자체는 그저 ‘한글 창제’에 있었던 과정을 소설로 풀어낸 평범한 글이다. 엄청나게 재미있거나 재미없는 것도 아닌, 수많은 역사 소설 중에서 아무거나 한 권 뽑아들었을 때 걸릴 법한 그런 소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한글 창제와 반포 전후로 있었던 일들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외국인 작가가 한글에 취해서 쓴 소설이기에 국뽕이 다량 함유되어있다는 게 특징이다. 한글과 세종대왕을 외국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 이런 느낌이구나 싶은 감상도 이 책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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