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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Fiction_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by nitro 202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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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2018)

신비한 검색 알고리즘의 인도는 유튜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터키쉬 딜라이트에 대해 알아보다가 나니아 연대기를 찾고, 나니아 연대기에서 자연스럽게 C.S.루이스로 이어지며 그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까지 손이 닿았다.

나니아 연대기로 인해 얻는 명성으로 판타지 소설 작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본업은 신학자. 더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 변증가, 즉 종교를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그의 조카에서 쓴 편지를 모은 서간문집의 형태로 되어 있다.

그 편지를 통해 스크루테이프는 어떻게 해야 인간을 타락시킬 수 있는지, 또 원수(하나님)의 작전을 회피하고 저지하려면 어떤 계책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충고한다.

“뭐니뭐니해도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제일 좋은 방법은 과학서적 따위는 아예 읽지 못하게 하면서 ‘그런 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그럴듯하고 막연한 느낌만 심어 주는 거지. 어쩌다 주워들은 이야기나 이런저런 쪼가리 독서를 통해서 말이다.”

인터넷으로 배운 자칭 전문가들이 넘치는 시대인지라 그 중에 악마도 몇 마리 섞여있지 않을까 싶게 만드는 구절도 있고

“우리의 바람은 이왕 그리스도인이 된 인간이라 하더라도 ‘기독교와 무엇무엇’이라는 심리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슨 소린지 알겠지. 기독교와 위기, 기독교와 신(新)심리학, 기독교와 나치 독일의 질서, 기독교와 신유의 역사, 기독교와 심령연구, 기독교와 채식주의, 기독교와 맞춤법 개혁 같은 걸 찾게 하라구. 신앙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무언가 기독교적 색채를 띤 유행을 들어앉히거라.”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당연히) 기독교 서적으로 분류되어 종교 서적 서가에 꽂혀 있는데 그 주변에 꽂힌 기독교 책이라는게 죄다 악마의 주장대로 '기독교와 어쩌구저쩌구 최신유행'으로 가득하다는 데서 다시 한 번 섬뜩하면서도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를 느낀다. 대악마가 “현재 우리의 가장 큰 협력자 중 하나는 바로 교회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있었던 부분은 기독교의 고전적인 죄악 중 하나인 탐식에 대한 대목.

“그 노인네가 실제로 원하는 건 그저 잘 우려낸 홍차 한 잔, 제대로 익힌 달걀 하나, 또는 적절하게 구운 빵 한조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간단한 음식을 ‘제대로’ 해내는 하인이나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제대로’라는 주문 뒤에는 자기가 옛날에 느껴 봤다고 생각하는 그 입맛, 재현이 거의 불가능한 그 입맛을 채우려는 물릴 줄 모르는 욕구가 숨어 있다. 노인네는 그 옛날을 “좋은 하인들을 구할 수 있었던 시절”이라고 묘사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감각이 지금처럼 까다롭지 않고 다른 것에서 얻는 즐거움도 많아서 식탁의 쾌락에 이 정도까지 매달리지 않았던 시절’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지. (중략) 스스로 음식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다고 믿게 하고, 스테이크를 ‘제대로’ 만드는 유일한 식당을 발견했다고 으스대게 만들거라. 처음엔 허영심으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습관으로 굳어지는 법이다. 어떻게 접근하든지 간에 중요한 점은, 제가 좋아하는 어떤 것 - 샴페인이든 홍차든 생선요리든 담배든 아무거나 - 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짜증을 부리게’ 해야 한다는 거야.”

미식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맛있는 것을 찾는 행동 자체는 죄악이 아니더라도 그 과정에서 까탈스럽고 무례하고 고마움을 모르는 인간이 되어간다면 충분히 지옥행 익스프레스 탑승권을 끊는 셈이다,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불교에서도 괴로움과 죄악은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욕망하고 그 욕망이 채워지지 않음으로 해서 발생한다고도 하니 어느 정도 통하는 면도 있는 듯 하고. 마태복음에서 나오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라는 대목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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