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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Fiction_소설

마법사의 허브티

by nitro 2025.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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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허브티 / 아리마 카오루 지음, 신우섭 옮김. 영상출판미디어 (2019)

갈곳 없는 소녀가 친척 집에 의탁하려고 찾아갔는데 알고 보니 카페의 탈을 쓴 마법사의 정원이었더라~는 내용.

사람들의 과거나 추억과 얽힌 허브 이야기가 라이트노벨 특유의 가볍고 잔잔한 분위기로 이어진다.

이제는 몇 번째인지도 모를 오르막 언덕을 다 오르자, 문득 공기가 변한 것을 깨닫는다.
태양에 달궈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미지근한 물과 땅, 무언가가 부패한 듯한 냄새가 없어졌다. 아니, 다른 냄새에 덮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향기가 바람에 섞여있다.
꽃? 아니 꽃이라기보다 풀에 가깝다. 어쨌든 식물의 향기다. 식물의 향이 진하다. 하지만 유키가 기억하고 있는 수풀이나 숲과도, 논이나 밭의 냄새와도 다르다.
달콤한 듯한, 매콤한 듯한, 씁쓸한 듯한, 시큼한 듯한, 미각을 자극하는 듯한 향기가 혼돈스러우면서도 조화롭게 하나로 녹아들어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의 복잡한 향기에, 신기하게도 온몸이 시원해졌다. -p.8
선생님이 자신만만하게 찬장에서 손바닥 사이즈의 병을 꺼낸다. 거기에는 타이 쌀 같은 형태의 가늘고 긴 씨앗이 들어있었다. 선생님은 작은 병에서 씨앗을 한 자밤 집어, 당근, 양파, 감자, 돼지고기가 춤추고 있는 주물 냄비 속으로 넣었다. 야채와 고기를 볶는 고소한 향기에 에스닉한 향이 더해져, 아직 위에 아침에 먹은 것이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유키의 식욕이 자극받는다. (중략)
선생님의 모습을 보자마자 할아버지는 벌떡 일어섰다.
"어떻게 한 겐가?! 뭘 넣은 게야!"
"첨가한 것은 커민 씨앗입니다. 참고로 카레를 만든 건 저 아이입니다. 아주 간단한 가정요리지요."
"그 뭐시기 하는 씨앗을 넣은 것만으로 이 맛이 난다고?"
"한 자밤의 마법입니다."
선생님이 의기양양하게 답한다.
"하지만 그런 씨앗,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어. 부엌에는 없었다고."
"댁의 정원에 자라 있었습니다. 당신이 잡초라고 가리킨, 바늘같은 잎을 가진 풀이 커민입니다. 번식력이 강하고, 딱히 예쁜 꽃이 피는 것도 아닌 수수한 모습. 실제로 허브는 잡초 취급받는 것이 많습니다. 허브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더욱 그렇고요."
할아버지는 선생님의 말에 허탈해한다. 부인은 기르기 쉬운 식물을 적당히 심은 것이 아니고, 잡초를 방치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확실히 집사람의 카레지만, 한 가지 불만이 있네."
할아버지가 쥐어짜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집사람이 만든 것보다 맛있어."
선생님은 곤란한 듯한, 한편으로는 쑥스러운듯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부인은 아마도 커민을 좀 많이 넣으셨을 겁니다."
"뭐야, 요리가 서툴다는 말인가?"
"아니요. 분명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커민은 건위 작용을 합니다. 식욕을 증진시키는 것만 아니라, 소화를 돕거나 위통을 완화시키기도 하지요. 당신은 위장이 약하지 않으신가요?" -p.80
시노는 컵을 양손으로 든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시간이 멈춘 듯 손 안에 있는 검은 액체를 가슴 앞으로 안고 있다.
"어머니?"
"이거야..."
시노의 입술이 떨리고 쉰 목소리가 흘러넘쳤다.
"이거, 아버지가 내려준 커피야."
"이런 커피가요?"
요코가 밉살스럽게 컵 안의 검은 액체를 가리킨다.
"이건 커피가 아니라 단델리온티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선생님에게 모인다.
"건조시킨 민들레 뿌리를 볶아 가르로 만든 것을 끓인 것입니다. 항간에서는 민들레 커피라는 이름으로 통하고 있습니다만, 커피와는 전혀 다릅니다. 민들레의 뿌리가 원료이므로 카페인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페인에 약한 시노 씨도 마실 수 있었던 겁니다. 진짜 커피와 향기도 다르고, 쓴맛과 깊은 맛도 덜하고, 조금 단맛이 나지요."
"그러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는 건가요?"
"전쟁 당시부터 전후까지 커피빈의 수입이 원활하지 않아 대용품으로 사용했었다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커피빈 대신 검은콩을 볶은 것이나 민들레 뿌리를 썼다고 합니다." (중략)
"민드렐라는 건, 여기저기 흔히 피어있는 그 민들레?"
"그래. 여기저기 흔히 피어있는 민들레야."
하루토의 질문에 선생님이 기쁜 듯 흐늘흐늘 웃는다. 시노가 조용히 말한다.
"너무 당연한게 있어서 그 고마움을 모두가 잊고 있는, 그런 꽃." -p.265

문학적으로 본다면 좀 너무 뻔하달가 단순한 구조인데다가 미칠듯한 흡입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냥 힐링타임용으로 허브티 한 잔 앞에 두고 설렁설렁 읽기 좋은 책.

다만 개인적으로는 허브 매직을 나름 깊게 팠던 경험이 있는지라 곳곳에서 등장하는 허브에 대한 묘사가 반갑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진짜 허브를 사용한 주술이 아니라 세간에 널리 퍼져있는 허브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일반적인 용도의 허브 활용법 정도만 소개하는 한계가 보여서 아쉽기도 하다.

저자가 스콧 커닝햄의 책 정도는 읽었다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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