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Nonfiction_비소설

셰프의 탄생

by nitro 2022. 10. 29.
728x90

셰프의 탄생 / 마이클 룰먼 지음, 정현선 옮김. 푸른숲 (2013)

CIA 요리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글로 써낼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 일을 먼저 해 버린 사람이 있었다.

마이클 룰먼은 아예 입학할 때부터 작가로서 요리학교에서의 삶을 책으로 쓰기 위해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CIA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책은 섬세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하는 현실감 넘치는 묘사와 풍부한 인터뷰로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작가 특권’을 사용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하는 부분이다. 서비스 시작을 10분 남겨놓고 눈돌아가게 바쁜 와중에 옆의 학생에게 이것저것 자꾸 물어본다면 그 손에 들고있던 도구 - 국자나 스페츌러나 스푼 -으로 얻어맞을 각오를 해야 할 테니까.

그래서 책에서도 저자가 “너는 요리사가 아니라 작가다”라는 말을 들으며 정체성의 혼란 내지는 갈등을 겪는 부분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2년여의 교육과정은 작가의 탈을 쓴 요리사로 사람을 개조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지만.

몇 가지 아쉬움도 남기는 하는데, 우선 CIA의 교육과정이 워낙 전문적인데다가 미국에서 진행되는 교육이다보니 한국에 사는 평범한 독자가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도 많다는 점이다. 책의 절반은 요리 용어가 차지하고 있는데 차이나캡과 시누아의 차이, 혹은 소투스와 소투아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주석의 도움 없이는 읽기가 힘들다. 주방 특유의 분위기, 식당 쪽문 너머의 세계에 발을 담가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그 분위기 역시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드는 원인이다.

또 다른 한계라면, 이 책의 저자가 CIA에 입학한 시기가 1996년이라는 사실이다. 20년이 넘는 과거의 CIA와 오늘날의 CIA는 또 다른 모습이다. 교육과정이 바뀌었고, 사람들이 바뀌었으며, 요리에 대한 시각과 인식, 요리법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사실이 그나마 나에게 희망을 갖게 만든다. 내가 책을 쓴다면 최소한 2020년 기준이니까.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