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예전에 한번 빌려봤던 책을 이번에 아예 구입했습니다.
'책'에 대한 욕망과 집착,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지식과 - '오름'으로 대변되는 - 감동, 이것에 의해 사람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며 변화하는지를 판타지 소설로 잘 풀어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요.
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글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부분도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단순히 흥미 위주의 모험 활극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읽을만한 이야기지요.
뒷부분으로 가면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서인지 좀 지나치게 (그리고 통속적으로) 과장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체의 수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비교적 깊은 주제를 알기 쉽게 풀어쓰는데 성공한 책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다음 단계.
젠틀 매드니스.
이 책은 아마 대다수의 사람에게, 심지어는 나름대로 책 읽는 것을 즐긴다는 사람에게도 지루한 책이 될 수 있습니다. 자극적인 책 홍보용 문구 - 2만권이 넘는 책을 훔친 블룸버그나 책을 얻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돈 빈센테 등의 이야기 - 만을 보고 이 책을 집어드는 것은 잘못된 선택입니다.
한두개의 이야기라면 모를까, 무려 1111페이지나 되는 엄청난 양 (해설집인 3부를 제외하면 848페이지) 전체가 이러한 이야기로 가득차있으니까요. 처음엔 재미있을지 몰라도 1부 절반도 가기전에 지겨워질겁니다. 설탕을 한스푼 먹으면 달콤하지만 계속 먹으면 역겨운 것과 마찬가지죠.
때문에 젠틀 매드니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이 책은 단순히 그러한 책에 미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니까요.
알렉산드리아 대 도서관이 존재하던 고대 역사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책에 미쳐있던 사람들을 총망라했다는 사실은 더 나아가 이들이 모았던 책, 그리고 그 책에 담겨있는 지식, 사회가 그러한 책과 지식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이 책을 손에 넣었는지를 보여주며 궁극적으로는 활용하기 위한 책과 소장하기 위한 책의 가치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런 이유에서, 젠틀 매드니스를 단지 흥미 위주로 본다면 이는 그저 '책에 미친 별난 정신병자들의 기록을 모은 두껍고 재미없는 책'에 지나지 않지만, 그 이면에 실린 배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책의 역사인 동시에 지식의 역사이며, 또한 책 자체를 일종의 예술품으로 여기는 애서광들의 모습인 동시에 지식을 얻기 위해 움직이는 거대한 힘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자료인 것이죠.
다행히도 저는 문헌정보학 전공이고, (세부적으로는 정보학을 배우고는 있지만) 서지학과 도서관사 등을 배운 덕분에 매우 재미있게 봤습니다. 아마 이쪽 계통과 관계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분노할만한 '3부'의 내용도 제게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니까요.
하지만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고 "나는 전형적인 부흐링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분이 아니라면 이 비싸고 두꺼운 '젠틀 매드니스'를 구입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보시고 '피가되고 살이되는 내용이다'라고 공감이 가면 그때 가서 구입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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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그리고 젠틀 매드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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