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가 특유의 스토리 텔링 능력으로 기념비적인 처녀작이 되었다면, 눈물을 마시는 새는 그동안의 과도기 작품(퓨쳐 워커나 오버 더 호라이즌, 폴라리스 랩소디 등)을 거쳐 또 하나의 완성된 세계관을 보여주면서 이영도를 한국 판타지 소설계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시켰다고 할 수 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 그리고 던젼 앤 드래곤 세계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많이 있어왔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완성시키고 그 설정을 글 속에 녹여내는데 성공한 국내 작가는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눈물을 마시는 새는 더더욱 의미있는 소설이다. 물론 나가는 다른 판타지 세계에서도 가끔 등장하는 종족이고, 레콘은 아울베어의 이미지와 비슷하며, 도깨비는 한국 설화에서 차용한 것이니만큼 완전히 독창적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들을 단순히 특이한 몬스터의 하나로 간주한 게 아니라 종족으로서의 개성을 살리고 그 차이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점을 풀어냈기에 대단하다. 게다가 오리지널리티로 따지자면 톨킨 역시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심장 적출이라는 의식을 통해 노화로 인한 죽음 외에는 거의 불사에 가까운 신체를 가진 파충류, 나가.
닭과 비슷하지만 거대한 체구와 엄청난 공격력을 지닌, 하지만 물보다 무거운 까닭에 수영을 못하고 그로 인해 종족 전체가 물에 대해 엄청난 두려움을 갖고 있는 레콘.
쾌활하고 장난을 좋아하며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데다가 한번 죽으면 영적 존재로 변해 삶을 이어가는, 그러나 피를 보면 무서워하고 폭주해버리는 도깨비.
그리고... 인간.
이 네 종족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대서사시가 바로 '눈물을 마시는 새'다. 이 제목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수께끼에서 유래되었는데, "세상에는 물을 마시는 새, 독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눈물을 마시는 새가 살고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빨리 죽는 새와 가장 오래 사는 새는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몸에 두기 해로워 흘려보내는 것을 마시기 때문에 가장 빨리 죽고, 피를 마시는 새는 몸 속에 계속 잡아두려는 것을 마시기에 가장 오래 산다. 하지만 피를 마시는 새는 그 피비린내 때문에 아무도 다가오지 않고, 눈물을 마시는 새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얼핏 보면 이게 뭔 소린가 싶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눈물을 마시는 새가 다른 사람의 눈물까지도 마셔주어야 하는 왕의 의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소설 전체에 깔려 있는 왕의 귀환과 연결된다.
그 외에도 한 몸에 여러개의 영이 머물러 있는 군령자, 통행료와 산양에 집착하는 유료도로당, 거대한 하늘치, 두억시니, 네 종족의 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얽히면서 지루할 틈 없는 소설을 만들어낸다.
이영도 특유의 꼬아서 말하기 때문에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좀 피곤할 수도 있지만 일단 읽다보면 완전히 몰입되어서 읽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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