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중 절반 이상이 가혹한 겨울인 르예프.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탄광지역에 거대한 보일러를 설치하고, 전국에 뜨거운 물을 공급하는 '왕실의 은혜'를 설치한다.
그리고 왕실의 은혜를 통해 세금을 걷으며 사적으로 난방하는 것을 금지.
얼핏 듣기엔 사회자본의 평등한 분배처럼 들리지만... 난방 파이프가 왕궁 및 귀족 거주지역을 다 돌고 난 후에야 서민 거주지로 들어오는 관계로 일반 백성들의 집에는 찬물이 지나갈 뿐이고, 그로 인해 겨울에는 얼어죽는 사람이 속출한다.
이런 배경에서 얼음의 정령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오실룬과 눈의 정령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오셀루나가 주인공으로 등장. 오실룬은 평민의 자식이고 오셀루나는 귀족가의 딸이지만 둘은 다정한 친구로 지낸다.
하지만 오실룬의 아버지가 르예프에서는 중범죄에 속하는 도열죄 -귀족 지역의 난방 파이프에서 열기를 훔치는 죄- 를 범하고, 가족 모두가 사형에 처해지는 범죄가 도열죄인 관계로 오실룬은 살기 위해 르예프에서 도망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귀족의 행세를 하며 르예프에 다시 나타난 오실룬. 어디서 만났는지 수상쩍은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조국을 거하게 털어먹을 사기극을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라는 게 주된 내용. 판타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배경은 거의 근대 문명 수준으로, 마법과 중갑옷 입은 기사 대신 증기 기관과 총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의 기구하게 얽힌 사연도 사연이고, 은근슬쩍 내비치는 민주주의와 권력 재분배에 대한 썰도 썰이지만, 그보다는 그럴듯하게 머리를 쓰며 이 사람 저사람 속이는 오실룬의 사기 행각이 더 볼만하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 좀 너무 뻔한 것 아닌가 싶은 결말인지라 불세출의 명작 반열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상혁 작가의 소설 중에서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소설인 듯.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