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경기라고 하면 내게 떠오르는 것은 딱 두가지. 휴일이면 종종 켜져있는 야구 중계를 보면서 '저 재미없는 것을 뭣때문에 보나'라고 생각했던 것과, 난생 처음 아버지 손을 잡고 갔던 야구 경기장에서 팔던 햄버거가 무척 맛있었다는 기억. 이 두가지뿐이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적으로 봐도 내 또래 이후의 세대가 자라날 당시는 3S정책의 약발이 슬슬 떨어지기 시작할 때였고,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 야구는 (일부를 제외하면) 어필하기 힘든 영화주제임이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감독은 '로키가 권투영화가 아니듯, 이 영화는 야구영화가 아니다'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볼때, 이 영화는 야구 영화다. 아니, 야구 경기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그렇게 재미없게 보던 야구경기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진행되는지를 보여줌으로 해서, 마지막 장면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일 뿐.
게다가 그 대상이 20연승(실제로는 16연승이었다지만)의 박철순이 아닌, 기록적인 연패의 감사용이라는 사실은 아마도 대부분의 분야에서 감사용의 수준 - 즉, 패전처리 전문투수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관객들이 더욱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런지도 모른다.
우리가 처한 상황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업계 1위, 학과 수석, 고액 연봉계약과 같은 번쩍번쩍 빛나는 화려한 단어들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리고 현실에 눌려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영화의 마지막 경기 부분은 단순한 하나의 야구 게임이 아닌, 관객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쫓아가는 한 선수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터의 카피라이트처럼)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1승을, 온 국민이 응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반부 80~90%정도는 약간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후반 10~20%에서 이를 충분히 만회하는 영화. 반드시 극장가서 볼 필요는 없지만 비디오로 한번정도는 반드시!
특히 도중에 자신의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해야 했던 사람이라면 필견.
앞서 말했던 내용을 뒤집어 엎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온국민이 감사용을 응원한다고 쳐도, 그 당시에는 어땠을까?
그게 문제다.
얼마 전 (04년 9월 1일) 서울대학 야구팀이 창단 최초로 첫승을 거두었다. 1977년 창단 이래 28년동안 200전 199패 1무. 삼미 슈퍼스타즈 정도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엄청난 전적이다. 오죽하면 대한야구협회에서 서울대 팀과의 경기에서는 타율과 타점, 홈런기록등은 아예 제외시켜버리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끝까지 야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가지. '서울대'라는, 상당히 어드밴티지 붙은 타이틀이 그 첫째요, 선수들이 '아마추어'라는 사실이 그 둘째다.
웬만한 지방대학교가 위와 같은 전적을 기록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50연패 전후로 사라졌으리라 본다)
서울대 야구팀이 체육 특기생이 아닌, 완전히 아마추어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가능한 기록이었을까? (대학시절 성적이 프로 계약과 그대로 직결되는 야구선수가, 서울대 야구팀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자살행위와 다를바 없다)
즉, 우리가 백전백패 서울대 야구팀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그들이 '서울대'인 동시에 '아마추어'이기 때문이지, 그들의 노력 자체에 대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거다. (여기에 플러스 알파해서 '비서울대 출신의 보상심리'와 '놀라운 패배기록 그 자체'를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와 '감사용'은 어떠한가?
지금에야 웃어넘길 정도로, 관대하게 봐줄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그 당시의 야구팬들에게 만년 꼴찌의 모습은 어떻게 보이는가?
계란세례로 범벅이 되는 삼미팀 버스가 확실한 대답이 되어준다.
그리고 여기에 연관되는 중요한 사실 또 하나.
우리는 '현재'를 살고있는 것이지, '과거'를 살고있는 것이 아니다.
즉, 몇십년 후에 오늘날의 실패한 나 자신을 돌이켜보며 '그래도 그 당시엔 최선을 다한 거였어'라고 자위하게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중요한건 지금 당장의 '결과'라는 뜻이다.
내가 아마추어인 분야는 상관없다. 게임이나 영화감상, 취미로 하는 운동 등에서 반드시 1위여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건 단지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완벽하다.
하지만 내가 프로인 분야, 예를 들어 학업이나 취업, 직장 내에서의 실적 등은 과정이 아닌, 결과의 문제다. 자신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나쁘면 계란세례를 맞을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몇십년 전의 감사용은 응원할 수 있어도 바로 어제 날아온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여드리며 '그래도 난 최선을 다했어요. 응원해 주세요!'라고 배짱 좋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