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이건 판타지건 한 장르에서 뛰어난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보니 한 우물만 파도 모자란 판에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소재를 가져다쓰는 퓨전 판타지나 이계 진입물이 정통 소설에 비해 한수 아래로 취급받는 경향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나름 작가로서 이름을 날리는 중견 소설가가 퓨전물에 손을 대는 건 그닥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끔 '초밥 명인이 퓨전 초밥을 만들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궁금증이 일기는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상운의 특공무림은 그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는 작품.
특전사 한무리가 무림에 떨어지면서 겪는 일들이 주요 줄거리다. 군인이 이계진입한 소설은 많다. 워낙 설정 잡기가 쉬우니.. 따로 기연이나 영약 안챙겨줘도 이미 갖고있는 총이나 수류탄으로 충분히 먼치킨 행세를 한다. 하지만 그런 이군깽(이계군인깽판물) 대다수가 평범하게 무림 고수가 된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대다수 양판소와 별반 다를게 없는데다가, 뜬금없는 '고구려 후예'같은 민족성 고취 및 역사적 자위로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특공무림은 그런 일반적인 이군깽과는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일방적인 학살이 아니라 총기 앞에서도 대등한 무력을 뽐내는 무림 고수들과의 대결, 같은 군인끼리의 배신 등 천편일률적인 양판소 줄거리에서 벗어났다. 물론 후반부 가면서 이것저것 잡다한게 너무 많이 등장하는데다가 군인들 역시 군인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무림에 물들어버린지라 퓨전의 독특한 재미가 좀 사라지기는 하지만 한상운 정도 되는 작가가 쓴 소설인지라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 소설은 거의 절반 이상은 코믹 무협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군데군데 배꼽잡게 만드는 설정이 끼어있어서 심각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마지막권까지도 웃으며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특히 조구호라는 폭력 중사가 우여곡절끝에 목숨을 건지고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면서 펼치는 하나님 드립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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