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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무협&판타지

표류공주

by nitro 2012.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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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및 판타지 소설계에는 잘난 주인공들이 너무나 많은지라 '못난 주인공'을 내세워 튀어보려는 작품들도 꽤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결국 주인공이 기연을 얻어 잘난 놈으로 탈바꿈하고 부와 명예, 사랑 등을 골고루 얻어가는 결말을 보여주곤 한다. 그나마 수준이 좀 높은 작품들은 '복수'를 주제로 해서 나름 통쾌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시종일관 약한 주인공이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표류공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원래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을 운명이었으나 어머니의 희생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주인공 모진위. 하지만 평균 이하의 병약한 신체를 갖게 되고, 그나마도 꾸준히 무공을 수련하지 않으면 젊은 나이에 요절할 운명. 그래서 어릴적부터 무관에 다니지만 이놈 저놈에게 동네북마냥 얻어맞고 다니는 신세.

무관에서 시작된 기구한 운명은 유랑극단을 따라다니고, 비밀 단체에 납치되어 살수 훈련을 받고, 도망자 생활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일대 모험을 겪으면서도 끝없는 고난만을 선사한다. 모진위의 삶이 길면 길어질수록 이것저것 배워 강해지기는 하는데 고난은 그 이상으로 심해진다고나 할까. 도고일척 마고일장(좋은 일이 한척 자라면 나쁜 일은 일장이나 자란다) 일구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상황이 또 있을까 싶다.

주인공의 연애사업만 해도 그렇다. 눈길만 주면 척척 넘어가는 여인들이 무수히 등장하고, 그도 모자라서 음마 색적들이 몽혼약과 춘약을 먹여 잘 포장까지 해놓은 상태에서 주인공이 등장해 다 쫓아내고 "음양화합 외에는 수가 없다"며 생명의 소중함을 여러 각도로 일깨워주는 경우가 다반사인 무협계에서 모진위와 뭔가 연결되는 여인은 단 두명. 그나마도 둘 다 지독하게 뒤틀려버린다.

굉장히 뛰어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호불호가 많이 갈리기도 하는데, 무협의 통쾌한 일면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시종일관 고난에 휩쓸리는 주인공에게 짜증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일거다. 심지어는 대망의 결말조차도 독자들의 소망을 저버린다. 아니, 그걸 해피엔딩이라고 여기려고 들면 나름 다들 행복하게 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서도...

결론적으로 애틋함과 비장미를 적절히 조화시킨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워낙 암울한 줄거리인지라 가볍게 읽을 수도 없고, 즐기며 읽기도 힘들지만 비극으로서의 무협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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