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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Fiction_소설120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사피엔스21(2008)질문이 많으시군요. 주인이 입을 열었다. 어디에서 오는지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치고는 말입니다.동전던지기에서 제일 크게 잃은 게 뭐요?네?동전 던지기에서 가장 크게 잃어 본 게 뭐냐고 물었소.동전 던지기요?동전 던지기.모르겠는데요. 사람들은 대체로 동전 던지기에 뭘 걸거나 하지 않잖아요. 보통은 뭘 결정할 때 동전을 던집니다만.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결정한 가장 큰 일이 뭐요?모르겠어요.시거는 25센트짜리 동전을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손톱으로 튕겨서 위쪽의 푸르스름한 형광 불빛 속으로 빙글 던져 올렸다. 그러고는 동전을 낚아채서 팔에 말아놓은 피 묻은 수건 바로 위쪽의 팔등헤 찰싹 내려놓았다. 그가 말했다. 맞히시오.- p... 2024. 11. 8.
히카루의 달걀 히카루의 달걀 /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오퍼스프레스 (2016)쇠락해가는 시골 마을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무라타 지로. 벼농사를 짓는 친구에게서 최고급 쌀을 받아 최고급 달걀을 얹어 회심의 달걀밥을 만든다. 이것으로 사람들을 모아 마을을 부흥시키겠다는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주인공은 바보스러울만치 착하고, 지로를 돕는 주변사람들 역시 착한 사람들 뿐이고, 일은 순조롭게 성공해서 모두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엔딩. 뭐랄까, 요즘 애들이 보는 동화책도 이보다는 더 악역이 많이 나오고 긴장감 있을 듯.하지만 소설의 색깔 자체가 힐링 소설인지라 그렇게 심하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거슬리는 건 일본에서만 국민 음식 취급받는 달걀밥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공감하는 게 힘들.. 2024. 10. 18.
특별요리 특별요리 / 스탠리 엘린 지음, 김민수 옮김. 문학동네(2015).추리소설 작가 스탠리 엘린의 단편 소설집.본격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약간의 스릴러와 아이러니 그리고 인간의 음습한 본성이 뒤섞인 소설이다.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은 표제작인 특별요리The specialty of the house.이런 류의 소설이나 영화가 워낙 많이 나온 까닭에 중반 정도만 가도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미식에 대한 표현과 집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자네는 미식가와 호식가를 혼동하고 있군. 후자의 경우 과포화 상태에 이른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하지. 반면 미식가는 소박함이 천성이야. 고대 그리스인들은 거친 키톤을 걸치고 잘 익은 올리브 열매를 즐겼고, 일본인들은 텅 .. 2024. 6. 19.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국신화전설 1,2 중국 창세 신화에서부터 진시황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집대성한 책.신화와 역사가 혼재되어 펼쳐친다는 데서 중국 역사의 장구함을 느낄 수 있다.특히 신화와 옛날 이야기는 그 나라의 문화 정체성을 형성하는 근간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무게감이 있는 책이기도 하다.다만 신화학자,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서술했기 때문인지 기대만큼 그렇게 재미가 있지는 않다.중국의 신화나 역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채지충의 만화 중국고전이나 고우영의 열국지 등이 더 쉬운 길일듯.물론 어느 정도 중국 신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위앤커의 저서가 좀 더 빠진 부분 없이 세밀하게 서술한다는 장점이 있다.개인적으로는 '이러저러한 중국 신화가 있다' 정도는 알아두는 기본 교양서로 한 번 읽어보면 좋다는 생각이 든다. 2024. 6. 7.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로미오와 줄리엣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제대로 다 읽어본 사람도 많지 않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원수 집안의 아들과 딸이 서로 사랑에 빠지고, 이런저런 장애물을 헤치며 사랑하다가 사소한 착오로 인해 모두 죽었습니다. 끝. 사실 사건만 놓고 보자면 "줄리엣과 그녀의 로미오 이야기보다 더 비통한 이야기는 절대 없었으니까"라는 말이 무색하게 온갖 막장 전개 신파극이 난무하는 요즘 기준으로는 상당히 밋밋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줄거리 안에 빼곡하게 채워진 셰익스피어의 문장력은 수만명이 골머리를 쥐어짜며 논문을 쓰게 만들 정도로 생각할 거리가 많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주제로 쓰여진 논문만 십만건이 넘는다) 원래는 영문학에 대한 소양이 깊을수록 보이는 게 많아진다던데 영어 원문으로도 읽어 봤지만 워.. 2024. 4. 18.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복고풍 느낌 물씬 풍기는 소설. 하긴, 1999년에 초판을 발행하고 2011년에 1차 개정판, 2024년에 2차 개정판이 나왔으니 그 뼈대는 어언 25년 전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십 년 단위로 개정판이 나오는 소설이라니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조금씩 더 나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소설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어머니에게 뇌종양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놀라고,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주인공과 가족들의 이야기. 병세가 심해지고,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매며 각종 처방과 민간요법에 의지하기도 하고, 결국 어지간히 나아서 일상을 되찾는 이야기다. 벌어진 사건만 놓고 보면 무미건조하건만, 가족이 한데 뭉쳐 병마와 맞서 싸우며 굴러가는 모습은 시대를 넘어 뭔가 짠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희망과 절.. 2024. 4. 3.
단지 뉴욕의 맛 단지 뉴욕의 맛 / 제시카 톰 지음, 노지양 옮김. 다산북스 (2018)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레스토랑 비평가 버전. 음식 작가를 꿈꾸는 뉴욕의 젊은 여성이 업계의 거물과 얽히며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권력을 움켜쥐려고 하지만, 결국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나아가는 그런 이야기. 여성이 권력을 잡는 방법은 남성성(혹은 투쟁심이나 경쟁심이라고 해도 좋은)을 획득하거나 여성성(남성을 유혹하는 것 뿐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특징을 무기로 삼는)을 부각시키는 두 갈래로 묘사되는 듯 하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여성성을 부각시키는 사람을 욕할 때 쓰는 말이 ‘창녀’다. 최소한 이 책의 저자, 제시카 톰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이 Food Whore, 즉 음식 창녀. 꽤.. 2023. 12. 15.
맛 Une Gourmandise 맛 Une Gourmandise /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홍서연 옮김. 민음사 (2018) 세계 최고의 요리 평론가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지나 온 맛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이야기.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한 그의 여정은 대다수의 독자가 예상치 못했던 결말을 맞는다. 하지만 그 전체적인 이야기보다도 더 매력적인 것은 각 장의 요리와 맛에 대한 묘사, 맛 뿐 아니라 그와 연결되어 맛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가 관능적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날것. 그것이 조리하지 않은 재료를 야만적으로 먹는 것으로 요약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근거 없는 일인가! 날생선의 살을 베는 것은 돌을 자르는 것과 같다. 초보자에게 대리석 암괴는 하나의 덩어리로 보인다.그는 끌을 아무 데나 대고 찍지만 돌은 .. 2023. 7. 26.
푸른 수염 "요리는 하나의 예술이자 권력이오. 내가, 그것이 누구든, 누군가의 권력에 복종하는 일은 있을 수 없소. 당신이 내가 하는 식사를 함께하고 싶다면 그건 대환영이오만, 반대의 경우는 사절이오." "사람들은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이렇게 말하지. 그런 여행을 하려면 나에게는 없는 단순함이 필요하오.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들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만들었다고 믿는다오. (역자 주: 프랑스어 동사 는 와 두 가지 뜻을 다 가지고 있다) 집주인은 순금으로 된 잔을 가지러 갔고, 부드러운 노른자 크림으로 그것을 채웠다. 사튀르닌은 넋을 잃고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바로크 양식의 금잔에 담긴 불투명한 노른자 크림이 너무 아름다워요!"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돈 엘레미리오는 처음으로 진정한 호의를.. 2023. 5. 25.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맛있는 음식 냄새가 밖으로 퍼져나오자 젊은이는 여행을 떠나며 준비해 온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 아침이었고, 오후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 3펜스짜리 양피 증지 가지고 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로빈은 한숨을 쉬며 혼자 말했다. - 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 권력있는 지인을 찾아왔는데 그 사람이 몰락한 모습을 보는 심정을 잘 묘사했다. 삼국지에서 노식이 끌려가는 모습을 본 유비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식민지 시절의 미국 주지사가 파리 목숨이었다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단편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는 곳에선 죽은 사람을 땅에 묻지. 죽은 사람의 모습을 산 사람들의 시야에서 가리기 위해서 말일세. 하지만 아마 백 년이 지나도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 2023. 5. 17.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동물농장 동물농장 /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민음사 (1998). 여러가지 전문 지식과 복잡한 사회 문제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쿠르츠게작트(Kurzgesagt)"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영어로는 In a Nutshell, 즉 간단하게 흝어보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여러 영상중에서 "우리는 또 다시 그럴 겁니다(링크)"라는 영상이 있는데 고차원적인 문제와 이론을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설명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 잘 알려준다. 그 해결책 중의 하나가 단순화로 시작되는 교육적 거짓말이다. 태양계 행성들의 크기는 너무나 차이가 크고 그 거리 또한 무시무시하게 멀지만 이를 단순화시키고 왜곡시켜 우리에게 친숙한 태양계 모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2023. 5. 12.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 조이스 캐럴 오츠 외 40인 지음. 현대문학 (2015) 단편집은 좋아하지만,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놓은 단편집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내 취향에 맞는 글과 맞지 않는 글이 온통 뒤섞여서, 내가 좋아할만한 글을 찾으려면 짚더미 속의 바늘까지는 아니어도 보석을 캐는 일곱 난장이의 수고 정도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전래동화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의 모음집으로, 모티브가 된 원작 역시 상당히 잔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들이 접하게 되는 말랑말랑한 동화들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아이러니 때문에 잔혹동화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고, 이 특이점을 활용하려는 작가들 역시 많았다. 하지만 유명한 동화만.. 2023.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