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가 일어섰다. “그라프 폰 호엔펠스, 콘라딘이라고 합니다.” 그가 자기소개를 했다. “1916년 1월 19일 뷔르템베르크의 호엔펠스 성에서 태어났고요.” 그러고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왠지 판타지 소설의 잘난 주인공이 할 법한 자기소개.
그의 이름만큼이나 옷차림과 행동거지가 귀족스러운 전학생이 오면서 소설의 열 여섯살 주인공 ‘나-한스 슈바르츠’의 관심은 오로지 콘라딘의 친구가 되는 것에 쏠린다.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고 조금씩 친해지며 세상을 다 가진듯한 감격에 휩싸이는 나.
하지만 나치당이 집권하고 급변하는 독일의 상황은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든다.
이 책의 서평에 자주 등장하는 ‘조그만 책’이라는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한 손에도 들어올 법한 조그만 판형도 그렇고, 160페이지라는 길이 역시 이 책이 작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조그만 책’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서평에 꼭 따라붙는 표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자 수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 소설이지만 우정을 쌓아나가는 과정의 몰입감이나 그 당시 독일의 유대인이라면 느낄법한, 숨이 턱턱 막힐듯 조여오는 나치즘의 확산에 대한 묘사는 충격적일만치 현실적이다. 특히 소설의 맨 마지막 문장은 지금껏 읽어왔던 내용을 다시 돌이켜보며 두 친구가 생각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제목 ‘Reunion’을 ‘동창회’나 ‘재회’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제목이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누군가가 “동급생, 아세요?”라고 물어봤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이요?”라고 대답하거나 아예 한 술 더 떠 “옛날에 유명했던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아닌가?”라고 말하는 대신 “프레드 울만의 소설 말이죠?”라고 대답하면서 지성인 코스프레를 할 수 있다는 것.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