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 정은정 지음. 한티재 (2021)
농축산업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다룬 에세이.
농축산업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먹는 문제고, 먹는 문제와 관련된 노동 문제, 인권 문제에 동물 복지 문제까지 줄줄이 얽힌다.
그런데도 흔한 ‘운동하는 분들’ 책처럼 강한 어조는 아니어서 오히려 잘 읽히는 느낌.
“지옥에서 보내는 한철이다. 한 달여의 방학 동안 급식이 없으니 아이들 밥을 해 대느라 괴로운 엄마들끼리 이를 두고 ‘세끼 지옥’이라 부른다. (중략) 아동 인구 감소로 아동은 줄어든다는데 결식 아동의 숫자는 줄지 않는다. 방학이 끝나야 그나마 숟가락 젓가락 들고 따뜻한 밥과 국을 먹을 수 있을텐데, 방학이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다. 소년의 밥상이 차다. 진짜 세끼 지옥은 바로 여기다.”
다만 ‘다른 운동하는 분들’ 처럼 인간 본성의 선함과 정의로움에 생각의 기반을 둔다는 것이 결국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인 듯 하다.
사람은 결국 자기 마음에 드는 것,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 자신에게 가까운 쪽부터 챙기도록 되어있다. 그것이 심지어는 사회 운동이라고 할지라도.
공정무역 커피가 나름 장사가 되는 이유는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불쌍한 사람들이 딱 그정도의 무게-대략 몇 백원쯤 비싼 아메리카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가성비 뛰어난 자기만족감인가! ‘종교시설 카페 때문에 무너지는 주변 상인들도 생각해 보시라’는 작가의 호소가 먹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다니는 교회나 절에서 굳이 한 블록 떨어진 카페를 가는 번거로움과, 후진국 불쌍한 농민들에 비하면 동네 카페 사장님은 그다지 불쌍해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저울에 올라간 결과랄까.
한가지 추가하자면 중간에 “여성 셰프는 없는데 정작 불과 칼 엄청나게 쓰는 학교 급식 현장에는 죄다 여자들일까?”라며 의문을 제시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저자가 조리와 (고급)요리의 차이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인 듯. 더 정확하게는 학교 급식은 뱅큇(연회요리)이나 뷔페, 카페테리아 대량 생산과 비슷한 분야인 반면 고급 식당은 알라카르트, 타블레도트의 형태다. 시간 압박의 차원이 다르다보니 파인다이닝은 그야말로 군대식으로 모든 요리사가 계급 및 역할이 나뉘어있다. 단순히 힘 쓰고 위험한 것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화, 그것도 상명하복이 철저한 조직문화에 적응하며 긴박한 환경에서 자신을 기계부품으로 치환하는 것 때문에 여성들이 적응하기 힘들다는 게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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