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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의 태양 아래서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서 / 프랜시스 메이어스 지음, 강수정 옮김. 작가정신 (2011)오래된 나들이용 은식기를 조금 챙겨 왔고, 잔과 접시를 몇 개 샀다. 처음으로 만든 파스타는 천상의 맛이다. 오랜 노동 끝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걸 모조리 먹어치우고 밭일하는 일꾼처럼 침내에 너부러진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건 훈제하지 않은 생베이컨인 판체타를 깟둑썰기로 썰어서 센불에 볶다가 크림을 붓고, 진입로나 축대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생 아르굴라(여기서는 루케타라고 부른다)를 넣어 만든 단순한 스파게티다. 그걸 접시에 수북이 담고 파마산 치즈 가루를 듬뿍 뿌려 먹는다. - p.50얼마 있다가 마르티니 씨가 도착한다. 그는 잣송이를 집어들더니 돌담에 대고 톡톡 친다. 검은 알갱이가 떨어진다. 그걸 돌멩이로.. 2025. 10. 10.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공산 국가들은 그 특성상 정부의 헛발질이 국민들에게 굉장히 큰 재난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특히 중국의 계획경제가 불러온 대륙적 규모의 재앙은 여러모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쪽으로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도 "참새는 해로운 새다"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고 있으니까.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모옌의 소설,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역시 스케일은 조금 작지만 중국 공산당의 계획 경제가 삐끗하면서 지방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맞물리면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예로부터 마늘 명산지로 유명했던 티엔탕 마을에서 정부가 다 사준다는 말만 믿고 마늘 재배를 왕창 늘렸다가 냉동창고가 꽉 차는 바람에 (그리고 그 와.. 2025. 8. 22.
혀 / 조경란 지음. 문학동네 (2007)자신의 연인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겨버린 요리사의 이야기. 그러다보니 식욕과 사랑의 유사점을 부각시키는 묘사가 책 전체에 걸쳐 등장한다. 음식이나 요리 이야기는 보통 따뜻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많은지라 간혹 이런 책을 접하게 되면 약간 당혹스러우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즐기게 된다. 다만 저자가 너무 요리를 사랑한 나머지 음식 이야기가 다른 주제를 압도하는 경향이 약간 보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럽게 읽었지만서도.그가 집안을 돌아다니며 장난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는 동안 나는 터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달걀노른자 위에 에멘탈치즈 간 것과 소금, 후추를 뿌려 달걀프라이를 만들었다. 햇빛에 바싹 말린 흰 테이블보를 티테이블에 펼쳐 깔고 그 위에 방.. 2025. 8. 13.
케이팝 데몬 헌터스 세 명의 케이팝 아이돌이 노래로 악귀를 봉인하고, 이에 맞서 악마들은 남자 아이돌 그룹을 결성해 반격에 나선다...제목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케데헌. 내용도 사실 그렇게 복잡하거나 생각할 부분이 많지 않다. 뇌 빼놓고 보기 딱 좋다는 소리.그런데 그 단순하고 뻔한 줄거리에 뛰어난 캐릭터와 훌륭한 음악을 잘 버무려서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을 만들어냈다.어디서 많이 본 공식 같다면 '겨울왕국'을 떠올리면 된다. 디즈니가 감을 잃지 않고 제대로 만들었다면 이런 식 아니었을까.곳곳에서 치고 나오는 한국적 요소가 국뽕으로 작용하지만, 한국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류를 충분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도 장점. 2025. 7. 15.
레고 거대한 파도 (31208), 분재나무 (10281) 오래간만에 질러버린 레고, 거대한 파도(31208)와 분재나무(10281).호쿠사이의 다른 작품들도 나쁘지 않지만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그 인지도나 작품성에서나 그야말로 압도적이다.원래는 목판화로 왕창 찍어내서 포장지로나 사용했다던데, 지금은 그 포장지 가격이 무시무시하다는 게 아이러니.분재는 예전부터 살까말까 고민은 했었는데 벚꽃을 개구리로 표현하는 바람에 미뤄뒀다가 이번에 파도와 함께 놓으면 좋을 듯 해서 구매.일본식 정원을 놓을까 분재를 놓을까 고민했는데 이 편이 더 어울리는 거 같아 대만족.다만 파도는 새를 쓰고 분재는 개구리를 썼는데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었나 싶다. 나름 뭔가 컨셉인가 싶기도 하고. 2025. 7. 1.
마법사의 허브티 마법사의 허브티 / 아리마 카오루 지음, 신우섭 옮김. 영상출판미디어 (2019)갈곳 없는 소녀가 친척 집에 의탁하려고 찾아갔는데 알고 보니 카페의 탈을 쓴 마법사의 정원이었더라~는 내용.사람들의 과거나 추억과 얽힌 허브 이야기가 라이트노벨 특유의 가볍고 잔잔한 분위기로 이어진다.이제는 몇 번째인지도 모를 오르막 언덕을 다 오르자, 문득 공기가 변한 것을 깨닫는다.태양에 달궈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미지근한 물과 땅, 무언가가 부패한 듯한 냄새가 없어졌다. 아니, 다른 냄새에 덮였다.지금까지와는 다른 향기가 바람에 섞여있다.꽃? 아니 꽃이라기보다 풀에 가깝다. 어쨌든 식물의 향기다. 식물의 향이 진하다. 하지만 유키가 기억하고 있는 수풀이나 숲과도, 논이나 밭의 냄새와도 다르다.달콤한 듯한, 매콤한 듯한.. 2025. 4. 26.
2025년 4월 웹소설 순위 & 추천 * 현재 내가 읽고 있는 웹소설 목록: 어떠한 후원이나 금전적 보상 없이 순수하게 내돈내산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완결작, 중도하차작 목록은 기존 포스팅(https://blackdiary.tistory.com/838)에 정리. 추천작- 예언의 아이가 살아남는 법: 약간 현실성의 비중이 높은 판타지 세계의 '밴드 오브 브라더스'- 고대 그리스를 씹어먹는 망나니가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뒷통수를 야무지게 때려야 하는 운명의 빙의자. 고대 그리스 세계의 일상을 잘 보여준다.- 마법사의 수기: TRPG 시절이 생각나는 정통 판타지.- 시간을 달리는 소설가: 회귀한 소설가가 베스트셀러 써서 유명해지는 소설. (거짓말은 아니다!) 추천작 외의 읽고 있는 소설들- 옆집에 대표님이 이사왔다- 고려에서 치트없이 문명합.. 2025. 4. 18.
무협 및 판타지 웹소설 317편 순위 & 추천 (완결작) * 최종 수정: 2025년 4월 18일 (리뷰 추가 -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 현재 연재중인 웹소설의 순위 및 추천은 https://blackdiary.tistory.com/1589 참조개인적인 기준으로 정리하는 무협 및 판타지 웹소설 순위.순위 집계 대상은 일명 양산형 판타지 소설로 불리는, 도서 대여점 인터넷 소설 플랫폼의 주 수입원인 웹소설들.국내의 대다수 무협 및 판타지 웹소설과 일본의 라이트 노벨 정도가 포함될 듯.이 소설 순위 및 추천이라는게 참 어려운 것 중의 하나인데, 사람마다 좋아하는 소설 유형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게다가 내가 전문 평론가도 아니고, 재미없는 소설 주구장창 읽다가 좀 재미있는 소설 읽으면 나도 모르게 별점 더 줄 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부지기수.더군다나 시간.. 2025. 4. 18.
기나긴 이별 기나긴 이별 /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김진준 옮김. 열린책들 (2020)커피와 담배, 위스키와 권총이 어울리는 하드보일드 탐정의 대표자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소설.클럽에서 만난 술친구를 도와 주면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 탐정이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도 벗고, 겸사겸사 진짜 사건의 내막도 파헤친다.아무래도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시조격이다보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데도 독자의 예상을 뒤엎기 억지 춘향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게 장점.소설 속에서 변호사가 "법은 정의가 아니오. 몹시 불완전한 체계란 말이오. 눌러야 할 단추를 또박또박 정확히 누르고 행운도 좀 따라 줘야 간신히 정의가 실현될까 말까요."라고 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자극적인 것만 추구하는 매스컴과 무능하고 .. 2025. 4. 9.
커피가 식기 전에 커피가 식기 전에 / 가와구치 도시카즈 지음, 김나랑 옮김. 비빔북스 (2019)하나. 과거로 돌아가도 이 찻집을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둘. 과거로 돌아가서 어떠한 노력을 할지언정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셋. 과거로 돌아가는 자리에는 먼저 온 손님이 있다. 그 손님이 자리를 비켜야만 앉을 수 있다.넷. 과거로 돌아가도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일 수 없다.다섯. 과거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커피를 잔에 따른 후 그 커피가 식을 때까지에 한한다.찻집의 이름은 푸니쿨리 푸니쿨라.당신이라면 이런 숱한 규칙들을 듣고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나요?커피 한 잔을 마실 시간동안 과거로 돌려보내주는 카페의 이야기.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도 결국 바뀌는 것은 없다. 병에 걸릴 사람은 병에 걸리고, 헤어질 사람은 이.. 2025. 4. 4.
보라색 히비스커스 보라색 히비스커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민음사 (2019)페미니즘을 주창하는 작가가 쓴 책이라 페미니즘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가부장적 가정에서 딸이 겪게되는 억압 뿐 아니라 기독교가 억압하는 아프리카의 토속 신앙, 군부 독재자가 억압하는 민주화 운동, 극심한 빈부격차 등이 모두 뒤섞여 혼란한 나이지리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가부장적/기독교적/억압적 환경인 아버지의 집 정원이 빨간색 히비스커스로 뒤덮힌 반면,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아직 아프리카의 전통을 지키며 자유롭게 사는 친척 집에서 가져 온 자유의 상징이다. 다만 나이지리아의 상황을 아프리카 국가들 모두에 적용시킬 수는 없는 것이,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는데다가 그렇지 않은 지역이라.. 2025. 4. 3.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 / 조앤 플루크 지음, 박영인 옮김. 해문 (2006)레이크 에덴의 미식축구 영웅, 론 라살르가 좌석에 얼굴을 묻은 채 쓰러져 있었다. 론의 하얀색 모자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주문이 적힌 클립보드가 바람에 덜컥대며 흔들리고 있었다. 한나의 카페에서 산 쿠키 상자가 열린 채로 좌석에 놓여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온통 초콜릿칩 쿠키 부스러기들이 널려 있었다.론의 한 손에는 여전히 쿠키가 들려 있었다.이윽고 한나의 시선이 그곳에 닿았다. 론의 코지 카우 데일리 배달 유니폼 셔츠에 뚫려 있는 끔찍한 구멍.론 라살르는 총에 맞아 살해당한 것이다 - p.25 "박사 학위를 얼마 남겨 두지 않던 시기였잖아. 제대로 마쳤다면 지금쯤 어느 좋은 대학의 교수가 되었을 텐데.""그럴지도."한나는 .. 2025.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