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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무협&판타지

비따비

by nitro 2015.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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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면서 기존의 만화, 소설 시장은 큰 지각 변동을 겪었다.

작가가 만화나 글을 써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면, 전문가들이 이를 읽고 판단해서 출판을 결정하는 모습은 이제 보기 힘들다.

그보다는 인터넷에 연재를 하면서 인기가 많아지면 유료 연재로 변환하고, 그 인기가 지속되면 종이책으로 출판되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이 되었다.

이는 창작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출판사 입장에서는 나름 인기가 검증된 작품들을 쉽게 선택할 수 있어서 상업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이점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문제 또한 적지 않은데, 그 중 하나가 작품의 흐름이 지나치게 짧고 흥미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라고나 할까. 16부작 드라마를 한데 묶어놓는다고 영화가 되지 않고, 장편 영화를 잘라놓는다고 연속극 드라마가 되지 않듯이 인터넷에서 연재되는 대다수의 소설들은 1회 연재분 (대략 3천자~5천자) 안에서 나름 흥미 요소를 유발하고 다음 회가 궁금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연재 중에는 나름 볼 만하다고 생각되던 작품들이 막상 완결된 후에 한 번에 몰아서 보면 그닥 재미가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 면에서 비따비는 각 화의 호흡이 짧은데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글의 퀄리티도 뛰어난, 흔치 않은 작품이다.

대기업의 중견 간부였던 주인공, 전제철. 그러나 회사 내의 권력싸움에 밀리는 바람에 일을 그만두게 되고, 아들과 함께 미국에 떨어져 살던 아내는 그 동안 모아둔 돈을 꿀꺽하고 잠적. 이를 견디지 못한 제철은 목을 매 자살을하고, 눈을 떠 보니 어린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을 알게 된다. 비따비(Vis Ta Vie: 너의 인생을 살아라)라는 제목답게 오랜 세월 쌓아온 회사원으로서의 경험과 미래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에서는 전생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을 성공시키며 승승장구하는 샐러리맨의 이야기.

이렇게 말하면 환생해서 미래를 알고 성공을 거저먹는 흔하디 흔한 현대 판타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손대는 일마다 로또 당첨되듯 술술 풀리는 일반적인 현대 판타지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전제철은 현실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짜서 사업을 성공시킨다는 데 묘미가 있다. 특히 실화를 기반으로 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실감나는 수출상사의 여러 업무와 사건들이 이 소설에 푹 빠지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 치열한 기업 세계의 암투와, 밀고 당기며 이해당사자들을 조율해 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시마과장'이나 '미생'의 환생물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라거나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철학적 테마를 찾기는 힘들다는 게 그나마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지만, 소설 본연의 목적인 재미를 추구하고 더 나아가 보통 사람들은 알지 못할 무역상사의 치열한 일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일독할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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