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발전은 미지의 공포에 대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 수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공포감을 느꼈으며, 이를 숭배하거나 극복하기 위해 노력 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두뇌로는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그야말로 우주적 스케일의 고대신이 선사하는 공포는 마음 한 구석에 숨겨진 본능을 자극하는 맛이 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러브크래프트.
모르는 사람이 듣기엔 '로맨스 소설인가'라고 오해하기 딱 좋은 이름을 가진 이 작가가 만들어 낸 세계관이 바로 "크툴루 신화"이며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오컬트 팬을 거느리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라는 건 말 그대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에,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공포에 미쳐버리는 묘사는 나와도 공포 그 자체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도대체 크툴루가 어떤 존재이길래 스치기만 해도 사람이 미쳐버리는가?
그래서 러브크래프트 소설은 매니악한 독자층이 형성되어있기는 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유명한 소설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 대신 충성 독자층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수 많은 2차 창작물도 쏟아져 나오는 판국.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세계관)" 역시 그 중 하나로 산업혁명 시대의 런던에서 되살아 나는 고대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너무나도 초월적인 존재이기에 역설적으로 독자들에게 공포감을 안겨주기 힘든 크툴루와는 달리, 이 소설에서는 러브크래프트 외에도 프랑켄슈타인, 퀴리 부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여러 소재들을 활용하면서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덕에 고대신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인지 능력을 지닌 독자들의 뇌로도 악취 풍기는 런던 길거리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장르소설계에서는 꽤나 마이너한 영역이 공포 소설인지라 대대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작가의 해박한 지식이 공포 소설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모습과 당시 생활상에까지 미치며 "영국인이 전생하고 보니 소설 쓰는 한국인 아니냐?"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
다만 러브크래프트가 그렇듯이 이 소설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묘사하며 이성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요소들이 유발하는 근원적 공포를 주무기로 삼고 있기 때문에 공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호불호는 꽤나 갈릴 듯.
총평: ★★★★☆ 갑자기 튀어나와 사람 놀래키는 말초적 공포보다는 비현실적인 세계가 가져다주는 근원적 공포에 대한 소설. 영화로 비유하자면 "13일의 금요일"보다는 "미스트"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크툴루 신화의 팬이라면 강추. 산업혁명 당시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공포 소설에 흥미가 가는 사람에게도 추천. 가볍고 익숙한 글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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